그림 읽는 밤
한 편의 영화를 관람하는 것은 무형의 미술관을 거닐는 경험이다.
카메라 프레임 안에 등장하는 회화 작품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그것은 감독의 목소리가 되고,
캐릭터의 내면을 해석하는 열쇠가 되며,
때로는 영화의 영혼을 관통하는 은유로 작용한다.
에드워드 호퍼의 <밤의 창문>는
관음증의 정수를 담은 아이콘이다.
이 작품은 히치콕의 <이창>(Rear Window)에서
휠체어에 갇힌 사진작가 제프의 고립감을 증폭시키고, 건너편 집에 대한 관음적 심리를 잘 표현 하였다.
작품의 유사성을 보여주는 더 잘 알려진 예는
에드워드 호퍼가 1925년에 그린 그림 "철길 옆의 집"과
영화 "싸이코"에서 노먼 베이츠가 사는 집일 것이다.
호퍼의 그림이 품은 “아름다운 고독”은 영화 속에서
공간을 넘어 시간까지 잠식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캔버스와 스크린 사이의 경계를 의문하게 만든다.
마그리트의 <인간의 아들>(The Son of Man)은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에서 더욱 신비로운 위장을 획득한다.
얼굴을 가린 사과는 억만장자 주인공의 이중적 정체성을 상징하며,
그림 뒤에 숨겨진 비밀 금고는 “보이는 모든 것 뒤에는 숨겨진 것이 있다”는
화가의 철학을 영화적 장치로 승화시킨다.
마그리트 스타일의 중절모와 정장을 입은 군중 속에서
주인공이 사라지는 결말은 회화가 움직이는 이미지로 변주되는 순간이다.
미그리트 작품에서 사과의 의미는 성경 속
아담과 이브의 원죄(Original Sin)를 상징할 수 있고,
‘인간의 아들’이라는 제목과 연관 지어보면,
이 남성이 원죄를 짊어진 인간을 대표하는 존재일 수 있다.
얼굴을 가린다는 것은 자아와 정체성의 모호함을 나타내며,
이는 인간의 본질을 감추려는 욕망,
또는 정체성을 완전히 드러낼 수 없는 현대인의 모습을 상징할 수 있다.
마그리트는 "모든 것은 항상 가려져 있다. 우리는 일부만 보고 있을 뿐"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즉, 사과가 얼굴을 가린 것은 우리가 진실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가려져 있는 현실을 의미할 수도 있다.
또한 마그리트의 작품 <피레네의 성>은 천공의 섬 라퓨타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모티브가 되었다.
왜 영화는 그림을 탐하는가?
영화 속 미술 작품은 세 가지 얼굴을 가진다.
첫째, 상징의 화신으로서 내러티브의 핵심 암호가 된다.
둘째, 공간의 변신으로 회화를 3차원 세트로 재구성해 관객을 그림 속으로 끌어들인다.
셋째, 시각적 유전자로서 감독의 미학적 DNA에 스며들어 영화 전체의 색감과 구도를 지배한다.
영화 끝 credits가 올라갈 때 우리가 떠올리는 것은 종종 주인공의 대사가 아닌,
한 점의 그림이 스크린에 새긴 여운이다.
그것은 두 장르의 경계를 해체하는 힘을 가진다.
마치 퇴고되지 않은 수필이 “편집되지 않은 영화”와 같다는 것처럼,
영화와 미술은 서로의 미완성된 아름다움을 채우며 새로운 의미를 낳는다.
“보이는 모든 것 뒤에는 숨겨진 것이 있다”는 마그리트의 선언은 영화와
미술의 교감을 관통하는 진리다.
캔버스는 스크린에서 제2의 생명을 얻고,
스크린은 캔버스에게 시간의 숨결을 불어넣는다.
이렇게 그들은 영원을 향한 동행을 시작한다.
전소미, 오정세가 출연하는 알바천국 광고에서
르네 마그리트의 골콩드(겨울비) 작품이 모티브로 사용됐다.
아르바이트생이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컨셉의 광고로 다양한 아르바이트 중인
전소미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모습이 연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