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1770-1776), 《책 읽는 소녀》
로코코 시대의 대표 화가 프라고나르의 걸작으로,
노란 드레스를 입은 소녀가 다소곳이 앉아 책읽기에
열중하고 있는 옆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프라고나르의 《책 읽는 소녀》 앞에 서면 시간이 멈춘다.
오른손으로 가볍게 책을 쥔 채 완전히 책읽기에 빠져있는 소녀의 모습에서
우리는 독서의 가장 순수한 형태를 목격한다.
노란 드레스가 창가의 빛을 받아 환하게 빛나는 순간,
그녀는 현실과 책 속 세계 사이의 경계에서 부유한다.
18세기 로코코의 화려함 속에서도 이 그림이 주는 감동은 소박하다.
화가는 거창한 서사나 상징을 배제하고 오직
한 인간이 문자와 만나는 그 찰나를 포착했다.
소녀의 옆모습만으로도 우리는 그녀가
얼마나 깊이 몰입해 있는지 알 수 있다.
어깨의 곡선, 고개를 살짝 숙인 각도,
책을 든 손의 자연스러운 자세까지,
모든 것이 독서라는 행위의 완벽한 조화를 보여준다.
르누아르의 《책 읽는 여인》에서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인상파 화가답게 그는 빛에 주목했다.
여인을 감싸는 부드러운 광선은 단순히 물리적 조명이 아니라
지식과 만나는 영혼을 비추는 내면의 빛이기도 하다.
책장을 넘기는 손끝에서 시작된 사유가 온 몸으로 퍼져나가는 듯한
순간이 캔버스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들 명화가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독서의 고독함이 결코 외로움이 아니라는 점이다.
책과 마주한 인간은 가장 충실한 대화 상대를 만난 상태다.
페이지 속에서 펼쳐지는 무수한 세계,
작가의 영혼과 독자의 마음이 만나는
그 신비로운 접점에서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진다.
특히 프라고나르가 포착한 소녀의 모습에서 우리는 순수한 배움의 욕구를 본다.
18세기라는 시대적 배경을 고려할 때,
여성의 독서는 지금보다 훨씬 의미심장한 행위였다.
"여자가 읽는 것을 배웠을 때, 여자의 문제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는 말처럼,
그녀의 독서는 단순한 여가가 아닌 세상과의 소통이자 자아 발견의 과정이었다.
화가들이 독서하는 순간을 화폭에 담은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 순간이야말로 인간이 가장 인간다운 모습을
보이는 때이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읽는 사람의 얼굴에는 평온과 집중,
호기심과 사색이 동시에 깃들어 있다.
이는 어떤 장식이나 연출로도 만들어낼 수 없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다.
오늘날 우리가 이 그림들을 보며 느끼는 그리움은 무엇일까.
스마트폰과 영상매체에 둘러싸인 일상에서 저토록 깊이 몰입할 수 있는 순간이
점점 희귀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프라고나르의 소녀처럼, 르누아르의 여인처럼,
오직 책과 나만이 존재하는 그 고요한 시간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명화 속 독서의 순간들은 우리에게 묻는다.
언제 마지막으로 그렇게 깊이 책 속으로 빠져든 적이 있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