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즈지스와프 벡신스키의 그림 앞에 서면 언어가 무력해진다.
"내 그림을 나도 잘 모릅니다"라고 담담히 말하던
그의 목소리가 캔버스 너머로 들려오는 듯하다.
굳이 이해하려 들지 말라는,
그 친절하면서도 단호한 거부감이 오히려 우리를 그의 세계로 더 깊이 끌어당긴다.
1984년 작품 속 두 해골이 서로를 끌어안고 있다. '영원한 사랑'이라는 제목이 붙어있지만,
벡신스키 특유의 방식대로라면 모든 작품은 'Untitled'여야 마땅하다.
제목이란 결국 의미의 감옥이 아닌가.
저 해골들의 포옹을 보라. 살점이 썩어 문드러진 채로도,
뼈만 남은 채로도 여전히 서로를 놓지 않는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어야 할까.
사랑인가, 절망인가, 아니면 그 모든 것을 초월한 어떤 원초적 갈망인가.
사춘기 내내 2차 대전의 포화 속에서 자란 화가의 내면풍경이
그로테스크할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추측은 너무 쉽다.
하지만 벡신스키의 부조리는 단순히 전쟁의 트라우마로만
설명될 수 없는 어떤 보편성을 지닌다.
그의 캔버스에는 우리 모두의 무의식이 꿈틀거린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불안과 욕망,
삶의 단조로움 속에 숨어있는 원시적 에너지가 기괴한 형상으로 드러난다.
"이미지에 대한 명백한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은 그런 이미지들에 난 늘 끌립니다."
이 고백 속에 예술의 본질이 담겨있다.
만약 그림이 하나의 상징으로 귀결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예술이 아니라 일러스트에 불과하다는 그의 단언은 예리하다.
예술은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보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 의미를 창조하게 만드는 것이다.
벡신스키의 '환시 미술'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빛난다.
환시미술이란 실제로 있을 수 없지만
환상을 보듯이 그리거나 만드는 예술이다.
그의 그림들은 우리에게 해석의 자유를 온전히 돌려준다.
저 뒤틀린 인체들,
무너져가는 건축물들,
황량한 풍경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작가는 알려주지 않는다.
아니, 알 수 없다고 솔직히 고백한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저 이미지들과 만날 수밖에 없다.
이는 비단 예술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삶 또한 하나의 뜻으로만 해석되지 않는다.
사랑도, 이별도, 성공도, 실패도 모두 다층적 의미를 지닌다.
벡신스키가 말하는 '오차허용범위'를 넓게 잡고 살아간다는 것은
삶의 모호함을 받아들이는 지혜다.
모든 것에 명확한 답을 구하려 하지 않는 것,
불확실성 속에서도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
벡신스키의 그림 앞에서 나는 묻는다.
저 해골들의 포옹이 끝나는 순간은 언제일까.
아니, 애초에 끝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나 할까.
답은 없다.
다만 질문만이 남을 뿐이다.
그리고 그 질문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영원한 사랑'을 발견해나간다.
무의미의 의미, 그것이 벡신스키가 우리에게 건네는 마지막 선물이다.
신은 그대를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