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에 새겨진 사랑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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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사를 관통하는 가장 강렬한 동력 중 하나는 사랑이다.

화가들의 붓끝에서 탄생한 수많은 걸작들 뒤에는

그들을 사로잡았던 여인들의 모습이 있다.

그들은 단순한 모델을 넘어 화가의 영혼과

예술 세계를 송두리째 바꾸어놓은 운명적 존재들이었다.


라파엘로의 포르나리나는 경건했던 화가를 현실로 끌어내린 여인이다.

만년의 라파엘로가 종교적 엄숙함에서 벗어나 육감적이고

세속적인 화풍으로 변모한 것은 그녀의 영향이었다.

한 여인의 사랑이 어떻게 거장의 예술 세계 전체를 뒤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극적 사례다.


미확인 995054 (2).jpg RAFFAELLO SanzioPortrait of a Young Woman (La Fornarina)15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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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빵집 딸로 불리는 마르게리타와 라파엘로의 사랑이야기는 열정적이었으나

과도한 사랑 때문에 라파엘로는 37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그의 여인은 라포르나리나에서 볼 수 있듯이

왼쪽 가슴 상외측에 혹이 관찰된 것으로 보아 아마 유방암일 가능이 큰데

2년 후 그녀도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시모네타 베스푸치의 초상. 보티첼리 작, 1480년경.jpeg 시모네타 베스푸치의 초상. 보티첼리 작, 1480년경


보티첼리와 시모네타의 이야기는 더욱 절절하다.

보잘것없는 외모의 화가가 피렌체 최고의 미인에게

품은 플라토닉한 사랑은 〈비너스의 탄생〉과 〈프리마베라〉

같은 불멸의 걸작을 낳았다.


22세의 나이에 결핵으로 요절한 그녀를 향한 보티첼리의 사랑은

죽음으로도 끝나지 않았다.

그가 시모네타의 발끝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긴 것은

예술가의 사랑이 얼마나 순수하고 영원한 것인지를 증명한다.


Simonetta_Cattaneo_de_Vespucci.jpg 시모네타 카타네오 데 베스푸치



한편 고야와 알바 공작부인의 관계는 보다 현실적이고 관능적이었다.

53세의 화가와 35세의 공작부인 사이에 타오른 불륜의 사랑은

당대 최고의 미인에 대한 찬사를 낳았다.

"앨버 공작 부인의 머리카락은 한 개 한 개가 모두 욕정을 불러일으킨다"는

평가는 그녀가 단순히 아름다운 여인이 아니라 시대를 매혹시킨 팜파탈이었음을 보여준다.


미확인 575717 (2).jpg GOYA Y LUCIENTES, Francisco deThe Duchess of Alba1795


GOYA Y LUCIENTES, Francisco de.jpg GOYA Y LUCIENTES, Francisco dePortrait of the Duchess of Alba1797


모딜리아니와 에뷰테른느의 사랑은 가장 비극적이다.

12살 연하의 젊은 연인은 화가가 결핵성 뇌막염으로

세상을 떠나자 이틀 후 임신 8개월의 몸으로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천국에서도 모델이 되어달라"는 남편의 말을 그대로 실천한 것이다.

죽음까지도 넘나드는 절대적 사랑의 모습이 여기 있다.


미확인 104587 (2).jpg ModiglianiJeanne Hebuterne1919



반면 샤갈과 벨라의 이야기는 가장 아름답다.

"검은 장갑을 낀 피앙세"로 시작된 그들의 사랑은

평생에 걸친 예술적 동반자 관계로 발전했다.

샤갈의 시적 고백 "구름위의 나의 하얀 약혼녀여!"에서

우리는 사랑이 어떻게 예술가의 상상력을 날개 돋게 하는지 목격한다.


벨라가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 9개월간 붓을 들지 못했던

샤갈의 모습은 예술가에게 사랑이 얼마나 절대적 존재인지를 보여준다.


Bella-in-Green.jpg Bella-in-Gr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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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한 보석상의 막내딸인 벨라는 당시 모스크바에서 배우수업을 받고 있었으나

샤갈과 결혼하면서 자신의 꿈을 버리게 된다.

이후 30년의 세월동안 오직 샤갈의 사랑만 받는 뮤즈로서 작품 대부분에 그녀는 등장한다.


제임스 티소, '공원 벤치', 1882~1885년.jpg 제임스 티소, '공원 벤치', 1882~1885년

티소는 사생아 둘을 가진 이혼녀와의 동거로 6년간 사교계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그녀를 사랑했던 티솟은 그녀가 폐병으로 죽은 후 40년간 그녀의 초상화를 팔지 않았다.

편견에 맞서는 사랑의 숭고함이 여기에 있다.


위 그림의 여인은 화가의 연인 캐슬린이고, 아이들은 그녀의 아들딸과 조카 릴리이다.

그림이 완성되기 전, 그림 속 여인 캐슬린은 폐병으로 죽었다고 한다.


화가들의 사랑은 때로는 순수하고,

때로는 관능적이며,

때로는 비극적이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그 사랑이 단순한 감정을 넘어

예술 창작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여인들은 캔버스 위에서 영원히 살아 숨 쉬며,

우리에게 사랑의 다양한 모습과 예술의 힘을 동시에 보여준다.

화가의 여인들은 그래서 단순한 연인이 아니라 예술사에 길이 남을 뮤즈들인 것이다.



https://youtu.be/INZr2qZgH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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