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딜레마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앵그르와 들라크루아 사이에서


미술관을 거닐다 보면 때로는 선택의 순간에 직면한다.

앵그르의 완벽한 선과 들라크루아의 역동적인 색채 앞에서 말이다.

마치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두 친구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처럼.


1.jpg 앵그르 <자화상> 캔버스에 유채, 작가의 79세 때 모습


앵그르의 자화상을 보면 권위와 위엄이 느껴진다.

79세의 노익장, 훈장과 메달로 치장한 모습에서 성취에 대한 자부심이 엿보인다.

반면 들라크루아의 자화상에는 지적이고 도도한 표정,

고상함과 감성이 공존하는 귀족적 분위기가 흐른다.

두 화가의 첫인상만으로도 이들이 얼마나 다른 세계에서 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2.jpg 들라크루아 <자화상> 캔버스에 유채


흥미로운 것은 이들의 출신과 작품 성향이 정반대라는 점이다.

평민 출신의 앵그르가 오히려 우단과 실크,

보석으로 치장된 화려하고 감각적인 그림을 그렸고,

명문가 출신의 들라크루아는 격정적이고 역동적인 붓질로 혁명적 작품을 선보였다.


들라크루아는 젊은 시절 제리코와 함께 보헤미안적 삶을 영위하며

쇼팽 같은 예술가들과 교류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수도자처럼 은거하며 작업에만 몰두했다.

12,000점이 넘는 작품 수가 그의 끝없는 노력을 증명한다.


3.jpg 들라크루아 <묘지의 고아소녀>캔버스에 유채 1824


1824년 살롱전은 두 화가의 대결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들라크루아의 <키오스 섬의 학살>은 '회화의 학살'이라는 혹평을 받았지만,

동시에 앵그르의 <루이 13세의 맹세>가 고전주의의 새 지도자로 그를 부상시켰다.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라는 시대정신이 두 거장을 통해 격돌한 순간이었다.


Eugène_Delacroix_-_Le_Massacre_de_Scio.jpg 들라크루아의 <키오스 섬의 학살>

히오스 대학살(Chios massacre) 은 1822년 오스만 제국 군대가 히오스 섬에서 수 만명의 그리스인을 학살한 사건이다.


들라크루아는 스스로를 진정한 고전주의자라고 생각했고,

앵그르 역시 내면에 낭만적 성향을 품고 있었다.

<발팽송 목욕녀>에서 보이는 나른한 감각성과 형태의 왜곡은

순수한 고전주의자라면 불가능한 표현이다.

이런 역설이야말로 두 화가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앵그르, 목욕하는 여인, 캔버스에 유채, 146×97㎝, 1808.jpg 앵그르, 목욕하는 여인, 캔버스에 유채, 146×97㎝, 1808


두 거장 앞에서 나는 늘 망설인다.

앵그르의 매끄러운 질감과 완벽한 형태에 이끌릴 때도 있고,

들라크루아의 생동감 넘치는 색채와 자유로운 표현에 매료될 때도 있다.

드로잉의 완벽한 경지와 정적 고요함을 원한다면 앵그르를,

역동적 공간과 격정적 감정의 고조를 느끼고 싶다면 들라크루아를 선택하라고 한다.

하지만 선택해야 한다면 과연 가능한 일일까?


결국 이 딜레마야말로 예술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두 거장이 보여준 서로 다른 아름다움을 모두 품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예술애호가의 자세일 것이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1830).jpg 들라크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1830)


P111007112049B.jpg 앵그르, 황제의 왕좌에 앉은 나폴레옹 1세, 1806



https://www.youtube.com/live/Wa_Nma4Nm9c?si=StEYbxGnAx-KZeH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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