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파스칼이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다면 세계사가 바뀌었을 것"이라 했던가.
기원전 69년에서 30년까지 39년의 짧은 생을 살았던
이집트의 마지막 여왕 클레오파트라 7세는
그 어떤 소설보다 극적인 삶을 살았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혈통답게 파라오의 율법에 따라
동생들과 결혼하며 왕좌에 올랐지만,
그녀의 진짜 이야기는 로마의 두 거장을 차례로
사로잡은 유혹의 드라마에서 시작된다.
클레오파트라의 삶에 대한 동시대 기록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녀의 삶에 대해 알려진 것의 대부분은 플루타르코스 Plutarch의 작품에서 나온 것이다.
기원전 48년,
권력투쟁에서 패배해 유배된 신세였던 클레오파트라에게 기회가 왔다.
이집트를 정복한 카이사르가 알렉산드리아 왕궁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삼엄한 경계를 뚫고 그에게 접근해야 했던 그녀는
기상천외한 방법을 택했다.
자신의 몸을 양탄자로 감싸게 한 뒤 충복으로 하여금 집정관에게 바칠 값진 선물이라며
카이사르 앞에 가져가게 한 것이다.
호기심에 양탄자를 펼친 카이사르 앞에 비너스처럼 솟아오른 반라의 여왕.
그 순간 로마 최고의 권력자는 한낱 여인의 포로가 되었다.
《유죄의 선고를 받은 갇힌 자들에게 독약들을 테스트하는 클레오파트라》는
이 냉혹한 여왕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권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그녀의 모습이 여기에 있다.
카이사르의 암살 후, 클레오파트라는 새로운 목표를 정했다.
삼두정치의 한 축인 안토니우스였다.
기원전 42년 소아시아 타르소스에서 벌어진 그들의 만남은
역사상 가장 화려한 유혹의 무대였다.
플루타르크의 기록에 따르면,
클레오파트라는 황금으로 치장한 갤리선을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왔다.
자주색 돛이 바람에 부풀고,
은으로 만든 노를 젓는 노예들이 피리와 하프 가락에 맞춰 춤을 추는 가운데,
사랑의 여신 비너스로 분장한 그녀가 금실로 수놓은 장막 아래 옥좌에 앉아 있었다.
로렌스 엘마테디마의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만남"에서
우리는 그 순간의 전율을 목격한다.
두려움과 경이로움이 가득한 안토니우스의 눈길과 요염한 눈초리로
그를 탐색하는 클레오파트라의 모습.
그 순간 또 다른 로마의 영웅이 이집트 여왕의 노예가 되었다.
사랑인가, 야망인가
클레오파트라는 단순히 아름다운 여인이 아니었다.
이집트어는 물론 여러 언어를 구사하며 외교사절과 통역 없이 대화할 정도로
높은 교양을 갖춘 지적인 여성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사랑에는 늘 정치적 계산이 따라다녔다.
카이사르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카이사리온을 공동통치자로 내세우고,
안토니우스와의 결혼을 통해 지중해 세계 최대의 부와 권력을 손에 넣었다.
안토니우스는 그녀를 위해 로마의 아내 옥타비아에게 이혼장을 보내고,
심지어 로마 제국의 분할까지 요구했다.
사랑에 눈이 먼 장군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로마인들에게 클레오파트라는 '나일의 마녀', '국제적 창녀'일 뿐이었다.
카이사르의 양자 옥타비아누스는 이를 국가의 수치로 여기며 전쟁을 선포했다.
기원전 31년 악티움 해전에서의 패배는 모든 것의 끝이었다.
안토니우스는 자결했고,
클레오파트라는 로마의 개선식에서 전리품으로 끌려다니는
굴욕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독사에 물려 죽었다는 그녀의 최후는 수많은 화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귀도 카냐치(1601~1663)의 《클레오파트라의 죽음》에서
독사가 벌거벗은 여왕의 젖가슴을 무는 자극적인 장면은
그녀의 생이 그랬듯 죽음마저도 관능적이었음을 보여준다.
들라크루아(프랑스, 1798~1863)의 《클레오파트라와 농부》는
무화과 바구니에 숨겨진 독사를 통해 운명의 예견을 그려냈다.
영원한 뮤즈, 불멸의 팜므 파탈
클레오파트라가 팜므 파탈의 원형이 된 것은
그녀가 자신의 아름다움과 지적 매력을 정치적 야심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사랑이 단순한 계산만이었을까?
안토니우스와 함께 죽음을 택한 그 마지막 순간에서 우리는 진정한 사랑의 흔적을 발견한다.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클레오파트라는 수많은 예술 작품의 영감이 되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안토니오와 클레오파트라》에서 할리우드 영화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권력과 사랑,
아름다움과 야망이 복합적으로 얽힌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파스칼의 경구처럼,
그녀의 코 하나가 바꾼 세계사는 아직도 우리에게 묻고 있다.
사랑과 권력, 과연 무엇이 더 강한 것인지를.
영화 클레오파트라 - 1999년작
1963년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