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언 따라 살아보기
폭격 소리가 서울 하늘을 찢던 1950년 6월,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피난길에 오르던 참이었다.
현금과 귀중품을 챙기는 것이 상식이었던 그 혼란 속에서,
한 사업가가 오히려 은행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한국유리공업(현: LX글라스) 창업주 최태섭 회장(1910~1998)이
은행 대출금을 갚으러 간 것이다.
직원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장부도 분실됐고, 다들 갚지 않는데도 꼭 갚으시겠습니까?"
전쟁통에 영수증 조차도 믿기 어려운 상황이었으나,
그는 단호히 답했다.
"정직하게 살겠습니다. 도장만 찍어주세요."
그 한 장의 영수증이 그의 인생을 바꿀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신뢰의 씨앗
최태섭은 피난 중에도 빚을 갚은 유일한 고객이 되었다.
6·25 전쟁이 끝난 후,
제주도에서 군납 어업을 시작했던 그는 원양어선 구입 자금이 필요했지만
담보가 없어 은행에서 거절당했다.
절망 속에서 우연히 전쟁 중 받았던 영수증을
부산 은행 직원에게 보여주자 상황은 극적으로 반전되었다.
직원이 놀라 소리쳤다.
"당신이 그 분이구나! 은행계의 전설입니다!"
이내 은행장은
"당신 같은 분께 신용을 주지 않는다면 누구에게 주겠는가?"라며
무담보로 2억 원(현재 가치 수백억 원)을 대출해 주었다.
그 자본으로 그는 어선을 구입해 사업을 확장했고,
결국 1957년 한국유리공업을 설립하며 국내 유리 산업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기업가로 성장했다.
정직의 뿌리
그의 굳은 신념은 우연이 아니었다.
평안북도 정주의 오산학교 시절,
조만식 선생에게 배운 기독교 정신과 "눈물과 땀과 피로 사회에 봉사하라"는
가르침이 그의 인생관의 밑바탕이 되었다.
특히 학교 창립자 이승훈이 직접 화장실 청소를 하며
보여준 "말이 아닌 행동으로 하는 교육" 은
최태섭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그는 평생 "손해 보더라도 약속은 지킨다"는 원칙을 지켰고,
종업원을 자식처럼 아꼈으며,
심지어 중국 공산화 시절 노동자들이 그를 목숨을 걸고 보호하기도 했다.
이는 그의 이웃 사랑 실천이 결실을 맺은 순간이었다.
- 최태섭 회장의 신념
전쟁 중의 한 번의 정직한 선택은 파장이 컸다.
한국유리는 단순한 유리 제조회사를 넘어 국내 10대 기업으로 성장했고,
최태섭은 "無에서 有를 창조한 국민의 희망"으로 불리며
1988년 한국경영자 대상, 1991년 국민훈장 목단장 등을 수상했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유산은 물질적 성공이 아닌 신뢰 경영이었다.
그는 "기업인은 기업을 소유하는 자가 아닌 청지기" 라는 신념으로
수익의 상당수를 교육(경희대·상명여대 등)과
복지(한국구호기아대책기구·실로암안과병원 등)에 기부했다.
전쟁 중 갚은 그 2억 원의 대출이 수천 억 원의 사회 환원으로 이어진 셈이다.
영국 격언은 말한다.
"평생 행복하려면 정직한 인간이 되라."
최태섭의 삶은 이를 증명한다.
전쟁 중 갚은 빚이 없었다면,
그가 받은 2억 원 대출도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 빅데이터 신용평가 시대에 그의 선택은 더욱 빛난다.
인공지능이 점수를 매겨도 "실천된 정직" 은 절대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장의 종이가 만든 기적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평생 쌓아온 신념의 결정체였으며,
혼돈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는 의지의 발현이었다.
그의 정직은 전쟁의 포성을 잠재우고
신뢰는 그의 인생에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