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언 따라 살아보기
한 남자의 평생을 바친 질문
19세기 어느 겨울날,
런던의 브리티시 뮤지엄에는 매일같이 같은 자리에
앉아 책을 읽는 한 남자가 있었다.
수염이 덥수룩하고 눈빛이 날카로운 이 남자는
하루 종일 책 속에 파묻혀 무언가를 열심히 적어 내려갔다.
그의 이름은 칼 마르크스.
그가 그토록 몰두해서 쓰고 있던 것은 바로 『자본론』이었다.
마르크스를 떠올리면 보통 '공산주의자', '혁명가' 같은 단어들이 먼저 생각난다.
하지만 그의 진짜 모습은 조금 다르다.
그는 무엇보다도 깊이 고민하는 철학자였고,
가난한 사람들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가 평생을 바쳐 던진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항상 가난할까?
왜 일하지 않는 사람들은 점점 더 부자가 될까?"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그리고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는 질문이다.
젊은 시절의 방황과 깨달음
마르크스는 처음부터 혁명가였던 것은 아니였다.
그는 대학에서 교수가 되고 싶어 했지만,
무신론자이고 생각이 너무 급진적이라는 이유로 꿈을 접어야 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신문 기자가 되었는데,
이것이 오히려 그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기자로 일하면서 그는 현실 세계의 충격적인 모습들을 직접 목격했다.
어린아이들이 하루 12시간씩 공장에서 일하고, 성
인 노동자들이 기계 부품처럼 취급받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이게 정말 옳은 일인가?"라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특히 파리에서 망명 생활을 하면서
그가 만난 두 가지는 그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하나는 공산주의 사상이었고,
다른 하나는 평생의 동지 엥겔스와의 만남이었다.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가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후원해 준 고마운 친구였다.
철학자의 눈으로 본 세상
마르크스는 헤겔이라는 철학자의 변증법에 매료되었다.
변증법이란 세상의 모든 것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계속 변한다는 생각이다.
정(正)이 있으면 반드시 반(反)이 나타나고,
둘이 만나서 합(合)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마치 춥고 더운 것이 만나서 따뜻함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헤겔과 한 가지 다른 생각을 했다.
헤겔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을 '절대정신'이라는 추상적인 존재라고 본 반면,
마르크스는 '물질'이 세상을 이끈다고 생각했다.
즉,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들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유물론적 변증법'이라는 그만의 철학이었다.
이 철학을 바탕으로 그는 경제 현상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15년간의 대작, 자본론의 탄생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을 수백 번 읽었다고 한다.
적을 알고 싶으면 적을 연구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을까?
그는 자본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담 스미스의 책을 누구보다도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드디어 1867년,
15년 이상의 연구 끝에 『자본론』 제1권이 세상에 나왔다.
이 책에서 마르크스가 가장 먼저 다룬 것은 '상품'이었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고파는 모든 물건들 말이다.
그는 상품에는 두 가지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나는 '사용가치'로 실제로 쓸모가 있는지를 뜻하고,
다른 하나는 '교환가치'로 다른 것과 바꿀 수 있는지를 의미한다.
그리고 상품의 가치는 그것을 만드는 데 들어간 노동시간으로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잉여가치, 그 놀라운 발견
마르크스의 가장 큰 발견은 바로 '잉여가치'라는 개념이었다.
이것을 쉽게 설명해 보면,
빵 하나를 만드는 데 3시간이 걸린다고 하자.
그럼 빵 하나의 가치는 3시간 분의 노동이다.
노동자가 하루 8시간 일해서 빵 8개를 만들면,
총 24시간 분의 가치를 만드는 셈이다.
그런데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하루 일당으로 3시간 분의 돈만 준다.
나머지 5시간 분의 가치는 어디로 갈까?
바로 자본가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마르크스는 이 5시간 분의 가치를 '잉여가치'라고 불렀다.
결국 노동자는 8시간 일했지만 3시간 분의 대가만 받고,
자본가는 5시간 분의 이익을 공짜로 가져가는 셈이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가 말한 '착취'의 원리였다.
자본가들은 더 많은 이윤을 위해 두 가지 방법을 쓴다.
하나는 노동시간을 늘리는 것(절대적 잉여가치)이고,
다른 하나는 기계를 도입해서 생산성을 높이는 것(상대적 잉여가치)이다.
어떤 방법을 쓰든 결국 노동자의 몫은 줄어들고 자본가의 이익은 늘어난다.
따뜻한 마음으로 쓴 차가운 분석
많은 사람들이 마르크스를 무서운 혁명가로만 생각하지만,
사실 그는 매우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런던에서의 망명 생활 중에는 가족과 함께 피크닉을 즐기기도 하고,
다른 독일 망명자들과 어울려 지내는 사교적인 면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여섯 아이 중 세 명을 잃는 아픔도 겪었고,
늘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엥겔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자본론』을 완성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연구를 계속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진심 어린 걱정과 사랑 때문이었다.
그는 "어떻게 하면 모든 사람이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를 고민했던 것이다.
예측은 틀렸지만, 사랑은 옳았다
1883년 3월 14일, 마르크스는 자신이 가장 아끼던 의자에서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사후 엥겔스가 유고를 정리해서 『자본론』 2권과 3권을 출간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결국 붕괴하고 공산주의 사회가 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역사는 그와 반대로 흘러갔다.
자본주의는 여러 위기를 겪으면서도 살아남았고,
오히려 20세기말에는 공산주의 국가들이 차례로 무너져 내렸다.
그렇다면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실패작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자본주의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마르크스가 지적한 문제점들을 조금씩 개선해 왔기 때문이다.
노동시간 단축, 최저임금제, 사회보장제도 등은
모두 마르크스의 경고를 듣고 만들어진 것들이다.
오늘날 다시 읽는 자본론
오늘날에도 부의 불평등은 여전히 심각한 문제다.
열심히 일해도 집 한 채 장만하기 어렵고,
한편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부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이런 현실을 보면 마르크스가 던진 질문들이 여전히 유효함을 느낀다.
마르크스와 아담 스미스는 종종 대립하는 사상가로 여겨지지만,
사실 둘 다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출발했다.
아담 스미스도 단순히 이기심을 추구하자고 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던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마르크스의 예측이 맞았느냐 틀렸느냐가 아니라,
그가 가진 인간에 대한 사랑과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한 열정이다.
수식과 그래프로 가득한 현대 경제학과 달리,
마르크스는 늘 사람을 중심에 두고 생각했다.
자본론의 교훈
마르크스는 자신의 묘비명에 이렇게 새겨달라고 했다고 한다.
"철학자들은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해 왔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
그는 단순히 세상을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했다.
비록 그가 꿈꾼 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그의 사상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자본론』을 읽으면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마르크스의 결론이 아니라 그의 자세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질문하며,
소외된 사람들을 잊지 않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것.
그것이야말로 마르크스가 우리에게 남긴 진정한 유산이 아닐까?
어쩌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마르크스와 같은
따뜻한 시선과 치열한 고민일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서.
"성공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단순한 능력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는 끈기에 있다."
– 칼 마르크스
"The difference between successful and
unsuccessful people is not merely ability,
but perseverance."
– Karl Marx
p.s 대한민국에서 자본론은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시기인 1980년대 말까지 금서였다.
이 책을 소장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간첩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써야 했다.
당시 '자본론'을 냈다는 이유로 1989년 3월 이론과 실천 출판사 김태경 사장이
국가보안법에 의해 구속되는 일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