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으로
한국 사회는 지금 행복에 지쳐 있다.
'파이어족-경제적 자립을 통해 40대 초반 전후에 은퇴를 꿈꾸는 이를 일컫는다.'
이라는 달콤한 유혹이 많은 직장인들을 설레게 하고 있지만,
주식, 가상화폐, 부동산 등 투자의 광풍이 휘몰아치며 그 허상을 낱낱이 드러냈다.
누구는 하룻밤에 수백억을 벌었고,
누구는 눈 깜짝할 사이에 평생의 재산을 잃었다.
이런 극단적인 풍경 속에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겠다는 다짐은 어느새 무색해졌다.
오히려 우리는 행복을 좇으면 좇을수록 더 깊은 불행의 늪으로
빠져드는 역설적인 '행복 피로감'에 시달리고 있다.
송파구의 직장인 A씨는 SNS에서 ‘욜로’ 해시태그를 지웠다.
그녀의 고백은 씁쓸했다.
"‘소확행’은 여우의 신 포도 같아요.
저도 수십억 벌고 싶지만 현실은 아니잖아요.
가상화폐로 대박 난 사람들을 보면 오히려 우울하고 짜증만 나요.
사진 올리고 ‘욜로’이라고 쓴다고 진짜 행복해지는 건 아니니까요."
그녀의 말은 행복이 개인의 진솔한 감정이기보다,
타인의 성공과 끊임없이 비교되는 사회적 압박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한 인터넷 게시판엔 "가상화폐로 340억 벌었다. 10명에게 1억씩 나눠주겠다"는
글이 올라와 1만 개가 넘는 댓글을 몰고 왔다.
댓글란은 '전 재산 날렸다', '사기당했다', '이혼 중이다'라는 절규와 계좌번호로 가득했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커녕,
한 방에 인생을 역전시키겠다는 필사적인 욕망의 현장이었다.
세대를 막론한 행복 담론의 중심에는 결국 ‘돈’이 버티고 있다.
젊은 세대는 가상화폐, 중년들은 집값 얘기뿐이다.
"결국 행복=돈 아닌가요?"
이제 ‘행복’이란 말조차 꺼려진다고들 한다.
통계는 이 불편한 현실을 냉정하게 증명한다.
응답자의 61.98%가 ‘지난 1년간 행복한 척해본 적 있다’고 답했고,
절반 가까운 49.86%는 행복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고 했다.
최근 한 달간 ‘매일 불행하다’(7.2%)는 답변이 ‘매일 행복하다’(5.22%) 보다 더 많았다.
이 숫자들은 행복이 내면의 감정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기준에 맞춰 연출해야 하는 ‘과제’가 되었음을 암시한다.
이는 행복은 개인적 감정인데,
한국에선 사회·경제적 성공을 행복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무너지면서,
남보다 뒤처진다는 불안감은 ‘행복 강박’으로 치달았다.
타인의 성공은 나의 불행에 가속도를 붙이는 촉매제가 되었고,
SNS는 이 비교의 고통을 실시간으로 확대 재생산하는 장이 되었다.
세계의 석학들은 일제히 경고한다.
행복에 집착하는 것은 불행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에밀리 에스파하니 스미스는
"행복에 대한 집착이 사회를 더 우울하게 한다"며,
행복이 눈에 보이는 성취 지표가 아님을 강조했다.
데런 브라운의 『해피』, 롤프 도벨리의 『불행 피하기 기술』,
마크 맨슨의 『신경 끄기의 기술』이 공통적으로 전하는 메시지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행복은 끊임없이 추구하거나 타인에게 증명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내면의 평정과 일상의 소중함을 인식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강조한다.
한국 사회는 점점 더 ‘행복의 양극화’로 변해가고 있다.
행복이 보여주는 것으로 변했고,
사회 양극화가 행복 양극화로 이어지며 집단주의 사회가
모두에게 똑같은 행복을 강요한다.
우리는 거시적 차원에서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복원해야 하고,
동시에 개인은 ‘행복해야 한다’는 사회적 강박에서 벗어나,
불완전한 자신과 불행의 순간마저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하다.
불행한 행복의 덫에 걸린 우리 시대.
진정한 행복은 눈부신 성취나 타인의 인정이 아닌,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의 소리처럼 평범한 순간에 감춰진 위로일지 모른다.
행복을 좇아 불행해지기 전에,
잠시 멈춰 지금 여기의 숨소리를 느껴보자.
불행의 용기를 가진 자만이 비로소 행복의 그림자를 벗어날 수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