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나는 미친 사람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광기와 치유의 어두운 우주를 발견했고,
내 감정, 두려움, 폭력, 희망, 기쁨을 그림으로 옮기는 법을 배웠다."-니키 드 생팔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Phalle, 1930~2002)은 이브 클라인 , 장 팅겔리, 자크 드 라 빌글레를
포함한 누보레알리즘(Nouveau Réalisme)그룹 내 유일한 여성 예술가였고,
페미니스트이며, 남성이 주도하는 예술계에서 인정 받은 몇 안 되는 예술가 중 한 명이었다.
** 누보 레알리즘은 1960년대 프랑스를 중심으로 형성된 새로운 미술 경향으로,
1950년대 유럽 미술계를 지배하던 추상미술과 급변하는 소비사회 사이에서
비판적 시각을 갖고 현실참여적인 실천을 특징으로 한다.
재현이나 감성적 추상이 아닌,
오브제와 물질적 재료를 직접 활용하며 퍼포먼스도 과감하게 실현한 전위미술 운동이다.
그녀의 대표작 '나나(Nana)' 시리즈는 풍만하고
당당한 여성의 몸을 화려한 색채와 기하학적 패턴으로 장식한 조각품들이다.
전통적인 여성상과는 전혀 다른 이 작품들은 마치 "나는 여기 있다!"고 외치는 듯했다.
가부장적 사회가 규정한 여성의 모습이 아닌,
스스로 정의한 여성성의 당당함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그녀의 '슈팅 페인팅(Shooting Painting)' 작업이었다.
그녀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들었다.
캔버스에 페인트가 담긴 주머니를 붙이고 총으로 쏘아 터뜨려 완성하는
이 작업은 단순한 예술 행위를 넘어선 의식처럼 보였다.
총성과 함께 터져 나오는 붉은 물감은 억압에 대한 분노이자,
동시에 새로운 창조의 순간이었다.
파괴와 창조가 하나로 만나는 그 순간의 카타르시스를 상상하며 나는 전율했다.
그녀는 “사람들이 그것을 예술이라고 생각하든 말든 나에게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왜 갑자기 총을 쏘게 됐을까.
그것은 평생에 걸친 트라우마에 뿌리가 있다.
그는 10세가 넘어 조부모 손에서 떠나 프랑스로 돌아와 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엄격한 교칙에 적응하지 못해 카톨릭 학교에서 두 번 퇴학을 당했고,
18세 때 결혼했지만 초반부터 남편은 불륜을 일삼았다.
니키는 "나는 아빠를 향해 쏘았다. 모든 남자들, 중요한 인물들,
나의 오빠, 사회, 학교, 수도원, 나의 가족, 나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나 자신까지도 겨누어 쏘았다"고 회고록 <나의 비밀>을 통해 밝혔다.
1998년 문을 연 이 공원은 '상처 입은 사람들을 치유해 줄
정신적 쉼터를 만들고 싶다'고 한 염원을 담았다.
구엘 공원에서 가우디에 영감을 받은 그가 44년 만에 꿈을 이룬 곳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이후에도 그는 수 많은 건축 조각들을 남겼다.
토스카나 타로 가든, 캘리포니아 에스코니도에 있는 키트 카슨 공원 등에 자신의 작품을 남겼다.
예루살렘 정부 의뢰로 라비노비치 공원에 어린이를 위한 괴물 '르 골렘'을
의뢰 받아 '괴물 공원'을 만들기도 했다.
생팔의 작품들은 결코 조용하지 않다.
강렬한 색채와 과감한 형태로 관람자에게 말을 건다.
때로는 도발적이고, 때로는 유쾌하며, 때로는 슬프기도 하다.
그녀의 '타로 가든'을 보며 나는 예술이 단순한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생명체임을 깨달았다.
니키 드 생팔은 자신의 트라우마와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어린 시절의 상처, 여성으로서 겪은 억압, 사회적 편견들을
그녀는 작품 속에서 당당하게 마주하고 극복해냈다.
그 과정에서 탄생한 작품들은 단순한 미술품이 아니라
치유와 해방의 메시지를 담은 선언문이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그녀의 메시지 앞에서 나는 깊은 여운을 느꼈다.
니키 드 생팔의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자신만의 색깔로 세상에 당당히 서라고 속삭인다.
그 속삭임이 내 마음 깊숙이 울려 퍼지며,
나 역시 더 용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