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시 카푸어의 예술세계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아니시 카푸어(Anish Kapoor, 1954~)는 인도 태생의 영국 작가로,

공간과 물질, 색, 그리고 비가시적 영역을 주제로

생명과 무의 개념을 조형적으로 탐구해왔다.


그의 대표적인 작업 ‘Void(공허)’ 시리즈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공간을 통해

탄생과 소멸, 생명의 무한한 순환성을 형상화했다.

검은 원형 혹은 벽에 뚫린 깊은 구멍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우주의 기원과 영원의 공백을 상징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존재와 시간의 개념을 새롭게 사유하게 한다.


'Descent into Limbo'의 흥미로운 사건

아니시 카푸어의 1992년 작품 'Descent into Limbo'는

예술의 힘과 관객의 인식에 대한 극적인 일화를 남겼다.

2018년 포르투갈 세랄베스 미술관에서 열린 카푸어 회고전에서

60세 이탈리아인 관람객이 실제로 이 작품의 구멍 속으로

떨어져 병원에 입원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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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정육면체 건물 바닥 중앙에 뚫린 원형 구멍으로,

벽면이 특수한 검은 안료로 칠해져 무한한 공간의 착시를 만들어낸다.

실제 깊이는 2.5미터에 불과하지만,

그 시각적 효과는 너무나 완벽해서 관람객이 실제 평면으로 착각하고 발을 디뎠던 것이다.

경고 표지판과 경비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어난 이 사건은

역설적으로 카푸어 작품의 완성도를 입증해주었다.

다행히 관람객은 회복되어 퇴원했지만,

이 일화는 예술이 단순한 시각적 경험을 넘어 물리적 현실을 조작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카푸어의 예술 세계

카푸어의 작품들은 물질과 비물질,

존재와 부재 사이의 경계를 탐구하는 철학적 깊이를 지닌다.

그의 대표작들인 'Sky Mirror' 시리즈는

거대한 오목거울을 통해 하늘과 땅을 뒤바꾸며 관람자의 인식을 교란시킨다.


33.jpg Sky Mirror


런던 올림픽 타워 'ArcelorMittal Orbit'는 나선형 구조로 도시 풍경을 새롭게 정의하며,

조각이 건축과 랜드마크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unnamed.jpg ArcelorMittal Orbit


특히 그의 'Void' 시리즈는 부재의 존재감을 극대화하는 작품들로,

물리적 공간에서 심리적 공간으로의 전환을 이끌어낸다.

벽면에 뚫린 깊은 구멍들은 단순한 조각을 넘어 명상적 경험의 공간이 되며,

관람자로 하여금 무한과 유한, 내부와 외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게 한다.


카푸어의 색채 사용 또한 주목할 만하다.

그의 초기 작품들에서 보이는 강렬한 적색, 황색, 청색의 안료 조각들은

물질성을 초월한 순수한 색채 경험을 제공한다.

최근의 벤타블랙(Vantablack) 사용은 이러한 탐구를 극한으로 밀어붙인 결과로,

빛을 완전히 흡수하는 이 소재를 통해 절대적 어둠의 조각적 구현을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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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블랙, ‘반타 블랙(Vanta Black)’은

빛을 99.965%를 흡수하며, ‘세상에서 가장 검은 안료’로 유명하다.

가시광선뿐만 아니라 사람이 볼 수 없는 자외선과

적외선, 전파와 소리까지 흡수하면서, 과학, 군사, 항공,

우주 산업 등에 널리 활용되고 있다.

그런데 예술계에서는 단 한 사람, 바로 아니쉬 카푸어만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

반타 블랙의 제작 과정에서부터 거액을 투자하며, 독점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2019년 MIT 연구진이 99.995%의 흡수율의

‘리뎀션 오브 베니티(Redemption of Vanity)’를 개발하면서

대중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검은색’의 타이틀도 함께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작품들이 갖는 가장 큰 매력은 단순한 시각적 충격을 넘어선

존재론적 질문의 제기에 있다.

'Descent into Limbo' 사건처럼,

그의 예술은 관람자를 수동적 감상자가 아닌 작품의 일부로 끌어들이며,

예술과 현실, 환상과 실재의 경계를 허무는 강력한 경험을 선사한다.


20250812_172031.jpg 세상을 뒤집다 II, 1995


20250812_180240.jpg 내가 임신했을 때, 1992


20250812_180339.jpg 코너로 슛하기, 2009


https://youtu.be/NladZfNJfSQ?si=iOtMZtitmjXWjYO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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