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미니멀리즘은 '더 적게'를 통해 '더 많이' 말하려는 예술 철학이다.
1913년 카지미르 말레비치가 흰색 바탕에
검은 사각형을 그어넣은 순간,
예술은 장식과 서술의 무게를 벗어던지고 순수한 형태의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 검은 사각형은 단순해 보이지만,
실상 수백 년간 축적되어온 회화의 관습을 한순간에 무너뜨린 혁명적 선언이었다.
미니멀리즘은 반발에서 태어났다.
1950년대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격정적 붓질과
주관적 감정 표출에 지친 작가들은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도널드 저드와 프랭크 스텔라, 솔 레위트 같은 작가들은
예술가의 손길이 드러나지 않는,
마치 공장에서 제작된 듯한 기하학적 형태들을 제시했다.
그들에게 예술작품은 작가의 내면이나 감정을 투영하는 거울이 아니라,
그 자체로 완결된 물체여야 했다.
이런 극단적 단순화는 역설적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유리섬유와 알루미늄으로 만든 저드의 상자들,
바닥에 놓인 카를 안드레의 철판들은 관람자로 하여금
형태, 색채, 공간, 빛의 순수한 관계를 직시하게 만들었다.
장식적 요소들이 제거된 화면에서 우리는 오히려 색과 형태의
본질적 힘을 더욱 강렬하게 체험하게 된다.
한국에서는 1970년대 중반 미니멀리즘이 독특한 방식으로 수용되었다.
박서보의 한지 위 연필 선들, 윤형근의 갈색 번짐, 정상화의 백지 격자들은
서구 미니멀리즘의 논리를 따르면서도 한국적 감성을 담아냈다.
이들은 행위와 재료, 시간과 공간의 만남을 통해 동양적 사유의 깊이를
현대적 조형언어로 번역해냈다.
반복되는 그리기 행위는 마치 명상과도 같았고,
단색의 화면은 고요한 침묵 속에서 오히려 풍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나 미니멀리즘이 항상 찬사만 받은 것은 아니었다.
지나친 단순화가 예술을 메마르게 만든다는 비판,
개성의 몰살이라는 우려,
그리고 엘리트주의적이라는 지적들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특히 한국의 단색회화는 1970년대 말 획일화와 경직화의 문제로 비판받기도 했다.
하지만 미니멀리즘의 진정한 가치는 제거의 미학에 있다.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면서 우리는 비로소 본질을 마주하게 된다.
복잡하고 소란스러운 현대 사회에서 미니멀리즘은 고요한 성찰의 공간을 제공한다.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이 여전히 우리에게 말을 거는 것은,
그것이 모든 장식을 벗어던진 채 순수한 형태로만 존재하며
무한한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기 때문이다.
미니멀리즘은 결국 '적음' 속에서 '많음'을 발견하는 예술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고,
본질을 향해 나아가는 용기를 준다.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미니멀리즘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https://youtu.be/f3m_WqxhL4o?si=9zLkjJLIfmf5YC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