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춘화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춘화는 고대 중국에서 결혼 예물인 "춘궁도(春宮圖)"로

시작되어 명·청대(16~18세기)에 전성기를 맞았다.

성리학의 '천리(天理)'가 강요하는 금욕적 도덕 아래서도

'인욕(人慾)'은 표출의 통로를 찾았고,

춘화는 부유한 상인과 지식인 계층에서 은밀히 유통되며

사치품이자 성적 교본 역할을 했다.


특히 《금병매》 같은 에로티컬 소설의 삽화로 제작된 춘화는

문학과 미술이 결합한 금기 넘나들기의 실험이었다.

당대 화가 당영(唐寅)은 《옥관음도》에서 남녀 정사를 시적 은유로 승화시켜,

춘화가 단순한 선정성을 넘는 예술적 가치를 지님을 증명했다.


소설 '금병매' 중 포도나무 아래서 노닥거리는는 서문경과 이병아, 반금련(왼쪽)을 묘사한 청나라 시대 작품. 작자 미상. 미국 미주리 주 캔자스시티 넬슨-앳킨스미술관l



대표적 작품과 기법


《춘궁화첩》(청대): 부채나 조개껍질에 은유적 정사 장면을 그린 휴대용 춘화. 남성이 여성의 발을 만지는 모습으로 성적 긴장감을 암시.


춘궁화접선.jpg 춘궁화접선


금지춘화문패.jpg 금지춘화문패


중국 춘화는 일본의 슌가(春畵)와 뚜렷이 구분된다.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다양한 사랑의 방식》이 노골적인 성기 묘사로

당대 저잣거리를 술렁이게 했다면,

중국 작품들은 병풍의 매화 문양이나 흐르는 강물 같은 자연 이미지를 통해 정사를 암시했다.

이는 유교적 검약 정신과 "노출 없는 관능"을 중시한 동양 미학의 영향이었다.



조선 후기 춘화는 중국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독자적 정체성을 형성했다.

19세기 김준근의 수출용 풍속화에는 중국 춘화의 구성이 녹아들었고,

김홍도 전칭(傳稱) 《운우도첩》은 진달래 만발한 산속에서의

정사를 그려 "춘화 속 서정성"의 정수를 보여줬다.

신윤복의 《건곤일회첩》에 등장하는 기생의 성교육 장면은 춘화가

단순한 향락을 넘어 사회적 기능을 가졌음을 증명한다.

그러나 조선의 유교적 엄숙주의는 춘화를 주류 예술로 성장시키지 못하게 했고,

대부분 익명 화가들의 손에서 은밀히 전승되었다.


현대 예술의 영감원으로 재탄생

20세기 들어 춘화는 새로운 생명력을 얻었다.

중국 출신 화가 장샤오강은 전통 춘화의 이미지를 해체해

권력과 성의 관계를 풍자하는 작품을 선보였고,

에곤 실레 같은 서양 화가가 일본 우키요에 춘화에 매료된 것처럼,

동양의 에로티시즘은 글로벌 예술계에 지속적인 영감을 공급하고 있다.


IE002398097_STD.jpg 은 스타킹을 신은 발리 노이질(에곤 실레,1913)


999.jpg Lovemaking, 1915


춘화의 진정한 가치는 선정성 너머에 있다.

명나라 《금병매》 삽화 속 정교하게 묘사된 가구와 의복은

당대 생활사를 증언하는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청대 부채춘화에 그려진 정원의 대나무와 창 너버로 희미히 보이는 산수는

성(性)을 매개로 포착한 삶의 총체적 풍경이다.

이는 억압된 욕망의 표출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직면하려는 예술적 용기의 발현이다.


현대 미술계에서 춘화를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뜨겁다.

중국 작가 리톈빙은 "춘화의 은유적 아름다움은 관객의 내면을 존중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비평가들은 노출 수위가 예술성을 훼손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금기의 그림자에 갇힌 이 꽃들은 우리에게 영원히 질문할 것이다.

가장 은밀한 순간의 진실마저 포용할 때,

비로소 완전한 인간을 마주할 수 있지 않은가?


20110621000299_r.jpg 강화도에 있는 세계춘화박물관 내부. 160여개국에서 수집된 5000여점의 춘화가 전시돼 있다. 춘화박물관은 오지열 시인이 운영하고 있는 사설 박물관으로 2011년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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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성박물관중 유명한 곳은 강원 삼척시 원덕읍 갈남리에 있는 ‘해신당공원’이다. 풍랑에 휩쓸려 죽은 처녀의 원혼을 달래고 풍어를 기원하기 위해 나무로 남근 모형을 깎아 제사를 올린 풍습에서 실마리를 얻어 조성한 조각공원으로 60여점의 크고 작은 남근 조각상들이 줄지어 서 있다. 또 제주도의 ‘제주러브랜드’와 ‘건강과 성 박물관’은 국내 성박물관의 대표격이다. 서울 인사동의 ‘재미있는 성문화박물관’도 춘화와 전통 여성용 자위기구인 ‘각좆’ 등을 전시해 보는 이의 눈을 사로잡고 있다. 박물관은 아니지만 경기 포천시 소흘읍의 일명 ‘남근카페’는 건물 외벽부터 실내 화장실까지 모두 남성 성기를 본뜬 ‘물건’들로 채워 주부들의 발길을 불러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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