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일본 그림에 우키요에(浮世繪)라는 것이 있다.
우키요에는 한자말 그대로 “덧없는 현세의 그림”이란 뜻으로
목판화로 찍어내는 그림을 말한다.
처음에 목판화는 흑백이었으며 오늘날과 같은 다양한 색채를 쓰게 된 것은
스즈키 하루노부(1725~70)에 의해서였다.
일본 춘화(春畵)의 세계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17세기, 에도 막부 아래 안정된 사회에서 태어난 이 예술은 처음에 사치품이었다.
상류층의 호기심과 탐미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화가들이 정성들여 손으로 그린 그림은 지극히 비쌌다.
하지만 19세기, 목판화라는 혁명적인 기술이 그 문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가츠시카 호쿠사이(葛飾北斎, 1760-1849)라는 거장이 서 있었다.
호쿠사이는 단순한 화가가 아니었다.
열네 살 나이에 목판화가의 문하생이 된 그는
당대 최고의 우키요에(浮世繪) 화방 중 하나인
가츠카와 슌쇼(勝川春章)의 공방에서 수련하며,
에도의 살아있는 숨결을 종이에 옮기는 법을 익혔다.
우키요에의 '떠다니는 세상의 그림'은
연극배우, 유명한 기녀, 씨름꾼, 일상의 풍경,
그리고 자연을 생생하고 장식적인 색채로 포착한 서민의 예술이었다.
그리고 그 생명력 넘치는 세계관 안에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
성(性)을 담은 춘화도 당당히 자리 잡고 있었다.
호쿠사이는 이 춘화의 경계를 과감히 넓혔다.
그의 춘화는 단순한 노출이나 관능의 나열이 아니었다.
거장의 솜씨로 섬세한 선과 대담한 구도,
그리고 위트를 담아내었다.
그리고 그 정점에 선 작품이 바로 <어부의 아내의 꿈>(通称: 蛸と海女)이다.
이 작품은 일본 예술사에서도 도발적이면서도
예술적 완성도로 유명한 아이콘이 되었다.
파도 아래, 젊은 해녀(아마) 한 명이 있다.
그녀의 몸은 두 마리 거대한 문어에게 완전히 휘감겼다.
한 마리의 촉수는 그녀의 허리와 허벅지를,
다른 한 마리의 촉수는 가슴과 목을 감싸 안으며,
더 나아가 그녀의 사타구니 사이로 스며들고 있다.
해녀의 표정은 기이하게도 고통보다는 몽환적인 쾌락에 잠겨 있다.
이 장면은 현대적 시각으로는 낯설고 심지어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호쿠사이는 여기서 단순한 관능을 넘어,
인간과 자연(혹은 초자연)의 경계를 넘나드는 기괴하면서도
강렬한 에로티시즘을 창조해냈다.
문어의 촉수는 억압된 욕망의 은유이자, 인간 본능의 동물적 표현으로 읽힌다.
이는 당시 서민들의 삶 속에 스며들던 민담이나 괴담의 시각적 변주이기도 했다.
호쿠사이는 춘화를 통해 인간 내면의 가장 깊고 어두운 욕망의 풍경을,
우키요에 특유의 장식미와 결합시켜 과감히 가시화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 도발적인 작품을 그린 호쿠사이는 70세가 넘어서야
진정한 예술가로 거듭났다고 믿은 인물이었다.
89세의 생을 마감하기 직전
"다만 5년이라도 더 살 수 있다면 진정한 화가가 될 수 있을 텐데"라고
한탄했다는 유명한 일화는,
그가 예술에 대해 가진 집요한 열정과 끝없는 갈증을 보여준다.
춘화 작가로서의 그의 모습도 이런 예술혼의 일면이었을 것이다.
그는 춘화를 통해 서민의 ‘회로애락’(喜怒哀樂),
특히 숨겨진 ‘애’(哀)와 ‘락’(樂)의 감정을 솔직하고도
예리하게 포착하여 대중화의 선봉에 섰다.
그의 목판 춘화는 비로소 예술이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닌,
에도 길거리의 평범한 사람들 삶의 일부, 욕망의 한 형태가 되게 했다.
호쿠사이의 춘화, 특히 <어부의 아내의 꿈>은 일본 예술사에서 한 획을 긋는 동시에
서양 미술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의 우키요에 목판화들은 유럽으로 건너가 마네, 모네, 고갱, 빈센트 반 고흐 같은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거장들에게 충격과 영감을 주었다.
우키요에는 일본적 취향과 일본풍을 즐기고
선호하는 사람들로부터 ‘자포니즘‘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이 본 것은 단순한 에로티시즘이 아니라,
대담한 구도, 평면적이면서도 강렬한 색채,
일상 속 초자연적 상상력을 포용하는 자유로움이었다.
춘화 역시 이 흐름 속의 한 요소였음은 부정하기 어렵다.
에도의 거리를 채웠던 그 목판 춘화들은 이제 박물관의 유리장 속에 있다.
그러나 호쿠사이가 먹으로 새긴 인간 욕망의 본질-
그 기괴하고도 강렬하며, 때로는 불편하지만 결코 외면할 수 없는 본능의 파노라마-은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숨 쉰다.
문어와 해녀가 뒤엉킨 그 장면은 단순한 관능의 기록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심연을 응시한 예술가 호쿠사이가 먹으로 남긴,
시대를 초월한 욕망의 초상이자 예술의 용기 있는 선언이다.
그것은 먹 냄새와 함께, 지금도 우리 귀엔 옛 화가의 중얼거림이 들리는 듯하다.
"다섯 해만, 다섯 해만 더..."
그 끝없는 탐구의 끝에 태어난 춘화의 선은 오늘도 꿈틀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