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조선 후기,
인간의 본능적 욕망을 화폭에 담아낸 그림이 있었으니,
바로 춘화(春畵)다.
춘화는 춘정화春情書, 춘의화春意書, 혹은 운우도雲雨圖라고도 한다.
'봄 그림'이라는 뜻이지만, 단순히 계절의 아름다움을 그린 풍경화가 아니다.
여기서 봄은 생명력과 번식, 그리고 인간의 가장 원시적인 욕망을 상징한다.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
조선 사회가 점차 개방적이고 현실적인 문화로 변모하던 시기에
등장한 춘화는 그동안 금기시되었던 성적 주제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조선 후기 최고의 풍속 화가로 꼽히는
김홍도(1745~1806)와 신윤복(1758 ~ 1814)도 여러 점의 춘화를 그렸다.
『운우도첩雲雨圖帖』은 김홍도가 19세기 전반경에,
『건곤일회첩乾坤一會帖』은 신윤복이 1814년 즈음에 그린 춘화이다.
운우雲雨는 비와 구름이 엉키듯 남녀의 성행위를 비유한 것이고
건곤乾坤은 하늘과 땅, 즉 남녀의 만남을 의미한다.
춘화도 풍속화의 한 부분으로 이를 통해 당대의 성 풍속과 사회상을 엿볼 수 있다.
『운우도첩雲雨圖帖』과 『건곤일회첩乾坤一會帖』은
조선 후기 춘화春畫가운데 가장 회화성이 뛰어나고 격조를 갖춘 작품으로,
춘화의 백미白眉로 평가된다.
김홍도와 신윤복 같은 대가들이 그린 춘화를 보면,
단순한 관능적 묘사를 넘어선 깊이 있는 인간 탐구를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의 붓끝에서는 육체적 결합 뒤에 숨겨진 감정의 미묘한 떨림,
욕망과 부끄러움 사이를 오가는 복잡한 심리,
그리고 인간관계의 은밀한 역학이 섬세하게 포착된다.
특히 신윤복의 작품에서는 여성의 주체적인 욕망까지도 과감하게 드러내며,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시각을 보여준다.
춘화가 지닌 또 다른 의미는 사회 비판적 성격이다.
유교적 도덕관이 지배하던 조선 사회에서 춘화는 일종의 저항 예술이었다.
공식적으로는 인정받을 수 없었지만,
은밀히 유통되며 억압된 인간 본성에 대한 솔직한 고백의 역할을 했다.
이는 단순한 외설이 아닌,
인간 존재의 완전성을 추구하는 예술적 시도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단편적이긴 하지만,
춘화의 기능과 감상 방식을 춘화가 욕망을 자극하고,
조작하며 특정한 성적 만남을 상상하게 하는 대체물로서 사용되기도 했다.
현대적 관점에서 춘화를 바라보면,
그것이 담고 있는 인간에 대한 통찰이 새롭게 다가온다.
성적 욕망을 부끄러워하거나 숨기려 하기보다는,
인간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받아들이고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조선 후기 화가들의 시선은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춘화는 인간이 지닌 이중성-
숭고함과 세속성, 이성과 감정, 도덕과 본능-을
모두 포용하는 예술적 담론이었던 것이다.
결국 춘화는 봄이라는 계절이 상징하는 생명력과
창조성을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차원에서 탐구한 독특한 예술 장르였다.
그것은 금기를 깨뜨리는 용기이자,
인간 존재의 온전함을 추구하는 예술혼이었으며,
오늘날 우리가 인간성을 이해하는 데 여전히 유효한 성찰의 거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