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벽에 걸린 예술혼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1.jpg


백악관을 거닐다 보면 복도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미술작품들이 있다.

이곳은 단순한 대통령 관저가 아니라

미국 역사와 문화가 집약된 살아있는 박물관이기도 하다.

벽에 걸린 그림 한 점 한 점이 미국이라는 나라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대변하고 있으며,

동시에 권력의 중심에서 예술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보여준다.


33.jpg 전시장처럼 변한 오벌 오피스


오벌 오피스(대통령 집무실)에 걸린 조지 워싱턴의 초상화부터 보자.

렘브란트 필의 붓끝에서 탄생한 이 작품은 단순한 인물화를 넘어선다.

건국의 아버지의 위엄 있는 모습은 현재의 대통령에게

끊임없이 책임감을 상기시키는 무언의 조언자 역할을 한다.

매일 아침 집무실에 들어서는 대통령이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시선,

그 속에는 200년이 넘는 미국의 무게가 담겨있다.


전임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집무실에 건 초상화는 6점이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20점을 걸었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부터 로널드 레이건, 토머스 제퍼슨, 에이브러햄 링컨,

앤드루 잭슨,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등 역대 대통령의 초상화가 새로 걸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정부 소유의 전직 대통령 초상화 중에

오벌 오피스를 채울 그림들을 선별하느라 카탈로그를 여러 차례 뒤적거리며 고심했다고 한다.


AQQMQGFK4_1453x1800.jpg 렘브란트, 조지워싱턴의 초상, 1845


우리나라는 어떤가!

전임 대통령을 초상화를 불태우지 않음을 다행이라 생각해야한다.

공공기관이나 사기업도 비슷하다.

전임자를 죄악으로 몰아가는 풍토는 없어져야 한다.

그래야 자신이 돋보이는 시대는 지났다.


5269_2.jpg


대통령의 공식 접견실이나 연회장 등으로 사용되는

이스트 룸(East Wing)에서는 또 다른 감동이 기다린다.

존 싱어 사전트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초상화는

20세기 초 미국의 역동성을 생생하게 포착했다.

인상주의적 터치로 그려진 대통령의 모습에서는

새로운 시대를 향한 진취적 기상이 느껴진다.

이처럼 백악관의 미술품들은 각 시대의 미학적 특징을 반영하면서도

권력자의 개성과 철학을 드러내는 창구 역할을 한다.


99.jpg 프랭크 솔즈베리,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초상화, 1947 바이든 대통령이 무려 반세기간 한자리를 지키던 초대 대통령을 내리고 루스벨트를 올리는 파격적인 선택을 했다.


흥미로운 점은 각 대통령이 재임 중 선택하는 작품들이다.

케네디 대통령은 프랑스 인상주의 작품들을 선호했고,

레이건 대통령은 미국 서부의 풍경화를 즐겼다.

오바마 대통령 시절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가들의 작품이

처음으로 백악관 컬렉션에 포함되었다.

이러한 선택들은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추구하는

미국상에 대한 비전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링컨 베드룸에 놓인 앤티크 가구들과 조화를 이루는 19세기 풍경화들을 보면,

예술이 어떻게 역사적 맥락과 어우러지는지 알 수 있다.

허드슨 리버 스쿨의 화가들이 그린 광활한 미국 대륙의 모습은

서부 개척 시대의 웅대한 꿈을 상징한다.

이 작품들 앞에 서면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미국 건국 초기의 이상향을 엿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Lincon-Bedroom-2005-HR.jpg Second Floor라고 한다.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의 딸 마가렛 트루먼이 링컨 유령을 보았다는 링컨 베드룸이 4층에 있다.


백악관의 미술품들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유명한 작품이어서가 아니다.

이곳의 예술품들은 권력의 공간에서 숨 쉬며,

매일같이 중요한 결정들이 내려지는 순간들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케네디가 바라본 그림,

9.11 테러 직후 부시가 마주한 조각상,

이런 작품들은 역사의 증인이 되어 특별한 아우라를 갖게 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이 미술품들이 미국 국민 모두의 것이라는 점이다.

백악관 투어를 통해 일반인들도 이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으며,

이는 예술이 소수의 전유물이 아닌 민주주의의 문화적 자산임을 보여준다.

권력의 중심에 예술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의 상징이 아닐까.


222222.jpg F.D.R. 초상화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워싱턴과 링컨을, 오른쪽에는 토머스 제퍼슨과 알렉산더 해밀턴을 배치했는데, 이는 이제껏 벽난로 주변에 걸린 가장 많은 초상화 숫자다.


88.jpg 앤디 토머스, 공화당 클럽

트럼프 대통령이 에이브러햄 링컨, 로널드 레이건, 리처드 닉슨 등 공화당 출신 역대 대통령들과 테이블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상상화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권력과 예술 사이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