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몽마르트르 언덕 위, 르누아르의 붓은 가족을 신성한 원형으로 승화시켰다.
《화가의 가족》(1896)에서 알린 부인의 모피 코트와 피에르의 세일러복은
부르주아적 위계를 암시하지만,
아이들이 유모 가브리엘의 소매를 움켜잡는 순간은
인위적 장식을 넘어선 생의 온기를 전한다.
르누아르가 17세기 벨라스케스의 계층적 구도를 차용하며 완성한
이 '이상화된 유토피아'는 가족을 안정된 기하학적 구조로 고정시키려는 욕망의 결과였다.
그러나 예술사는 이 환영보다 훨씬 복잡한 가족의 초상들을 간직하고 있다.
독일 태생의 금융가이자 미술품 수집가였던 에버하르트 야바흐는
17세기 최고의 가족 초상화 중 하나에서 아내 안나 마리아와 네 자녀와 함께 등장한다.
샤를 르 브룅은 인물을 매력적으로 묘사하지만,
작품의 상당 부분은 야바흐와 그의 문화적 관심사를 상징하는
책, 조각, 수학 도구 등에 할애되어 있다.
거울에 비친 화가의 모습은 팔레트의 흰색 물감에 붓을 담그고 있는 모습이다.
이중섭의 가족 화보는 르누아르와 정반대의 궤적을 그린다.
전쟁으로 찢겨진 가족—1952년 일본으로 떠난 아내와 두 아들—은
그의 창작을 고통스러운 부재의 미학으로 이끌었다.
담뱃갑 은박지에 새긴 《길 떠나는 가족》(1954)에서 달구지를 타고
남쪽으로 향하는 가족의 모습은 현실이 아닌 편지 속 삽화였다.
은지화(銀紙畵) 기법으로 그린 이 작품들은
"가족과의 행복한 재회라는 강력한 갈망이 투사된 부적"과 같았다.
장욱진의 화폭은 이중섭의 비애와 르누아르의 우아함 사이 제3의 길을 연다.
《집 가족 자연 그리고 장욱진》 전시에 담긴 그의 세계는
삼각형 지붕의 집 안에 옹기종기 모인 가족상으로 대표된다.
"나는 심플하다"는 신조대로 단순화된 형상은
한국전쟁 이후 황폐화된 현실 속에서 가족을 '보호의 방주'로 상징화했다.
그는 교수직을 버린 전업화가의 길에서 아내 이순경이 서점을 운영하며
생계를 맡는 역설적 지지체계를 경험했다.
"가족을 향한 사랑이 오직 그림을 통해 이해된다"는 고백처럼,
작품 속 가족은 생계를 위한 발버둥이 아닌 존재 자체의 축복이었다.
모성애에서 가족 해체까지 가족의 다면성을 증명한다.
메리 카사트의 《목욕 후에》(1901)에서 포동포동한 아기를 안은 엄마의
부드러운 색채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 뛰어난 테크닉으로 표현될 때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음"을 보여준다.
반면 에드가 드가의 《벨렐리 가족》은 검은 상복에 싸인 고모 부부의
어색한 시선 교차를 포착한다.
탁자 세로줄로 강조된 심리적 단절은 혈연보다
계급적 괴리가 만든 가족의 균열을 고발한다.
드가가 차가운 필치로 드러낸 '가족의 역설'은 오늘날 1인 가구 시대에 더욱 날카롭게 다가온다.
인상주의 대표 화가 중 한 명인 드가는 로맨틱한 그림의 이미지와는 달리,
그의 실제 성격은 뾰족했으며, 일생은 불행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부유한 아버지의 도움으로 프랑스에서 작업 활동을 하던 중,
아버지의 죽음으로 가세가 기울고 홀로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면서
파리 인상파 화가들과 조우를 시작했다.
<벨렐리 가족>은 바로 이 상황에 드가가 고모의 집을 방문하고 그린 그림으로,
작가의 삭막한 심리상태와 사진을 찍은 듯한 날카로운 관점이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가족이란 언제나 훌륭한 소재였다"
르누아르의 원형 구도가 꿈꾼 가족의 영원성은,
이중섭의 은지화에 스민 일시성과,
장욱진의 소박한 화폭이 그린 유동성 앞에서 해체된다.
예술가들의 붓은 가족을 단순한 유토피아가 아닌-
상실과 재구성, 갈등과 화해가 교차하는-
인간 조건의 현미경으로 포착해냈다.
그 초상들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가족사를 발견하고,
부서진 조각들 사이로 새어 나오는 사랑의 가능성을 되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