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위작의 세계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20250823_120117.jpg 코로의 소묘(왼쪽)와 흉내 내 그린 에릭 헵번의 소묘


"19세기 프랑스의 화가인 장 바티스트 카미유 코로가 소년을 그린 진짜 소묘는 어느 쪽일까."


전설적인 위작자 중 한 명인 영국의 에릭 헵번(1934-1996)

1991년 펴낸 자서전 '곤경에 빠져서'에서 미술품 감정가 등을 조롱하듯이

코로의 소묘와 자신의 소묘를 나란히 제시하며 이런 퀴즈를 냈다.

헵번은 1963년부터 1978년까지 루벤스, 반다이크 등을 흉내 낸

회화 작품과 조각품 500여 점을 만들어 유명 경매사와 미술관 등에 유통시킨 위작자로,

자신의 대규모 위작 사실이 들통난 뒤

"위작 유통의 책임은 감정 전문가들과 화상에게 있다"며 도발적인 논리를 제기했다.


"가짜 작품은 없다. 가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미술품에 붙은 라벨일 뿐이고 정작 필요한 일은

올바른 라벨을 붙일 수 있도록 전문가들을 교육하는 일이다"라고 주장했다.


SSI_20170217183116_O2.jpg 반다이크의 1618~1620년 작 ‘가시관을 쓰심’


SSI_20170217183159_O2.jpg 에릭 헵번은 ‘가시관을 쓰심’ 드로잉 위작(사진)을 만들어 냈다. 영국 박물관은 반다이크의 진작이라 믿으며 이 작품을 구입했다가 망신을 샀다.


미켈란젤로의 위작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미켈란젤로는 21살 때

《잠자는 큐피드》를 만들어 고대 유물인 것처럼 속여

추기경에게 팔았다.

이 작품은 땅에 묻어 오랜 시간이 지난 것처럼 위장했고,

당시 사람들은 고대 작품으로 믿었다.

이 사건은 위작이 예술가의 역량을 증명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음을 보여준다.


20250823_112149.jpg 지금은 없는 잠자는 큐피드상 추정


9999.jpg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큐피드상 (1490년경 작품). 이는 사라진 《잠자는 큐피드》와는 다른 큐피드상이다.


그의 실력을 인정한 리라리오 추기경은 환불 요청도 하지 않았고,

어떤 문제도 삼지 않고 미켈란젤로를 로마로 보냈다.

이 대단한 위작을 만든 어린 조각가는

그렇게 로마에 도착을 했고, 그리고 다음 해 1498년,

프랑스 대사로 바티칸에 내려왔던 장 드 빌레르 추기경으로부터

조각 한 점을 의뢰받았으니 그 작품이 바로 피에타이다.




Michelangelo's_Pieta_5450_cropncleaned_edit.jpg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성 베드로 대성당, 로마)


판 메이헤렌의 베르메르 위작: 나치를 속인 화가

네덜란드 화가 한스 반 미거런(Han van Meegeren)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의 작품을 위조해 큰돈을 벌었다.

그는 극도로 정교한 기법을 사용하여 당시 미술 전문가들조차 속일 정도였다.

반 미거런은 새 그림을 낡아 보이게 만드는 기법을 연구하는 데 4년을 보냈다.

가장 큰 문제는 유화 물감을 완전히 굳히는 것이었는데,

이 과정에는 보통 50년이 걸린다.

그는 유화 대신 합성 수지인 베이클라이트와 안료를 섞은 후

캔버스를 구워 이 난제를 해결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베르메르의 작품을 위조해 나치 독일의 2인자였던 괴링에게 팔았다.

전후 그는 나치와 협력한 혐의로 체포되었지만,

자신이 위작을 만들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감옥에서

《의사들 사이의 예수》를 직접 그려 보였다.

그는 매국노에서 나치를 속인 영웅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20250823_114433.jpg 한 반 메이거런의 ' 의사들 사이의 예수' , '성전 속의 젊은 그리스도' (1945)라고도 불린다.


20250823_115032.jpg 베르메르의 ' 파란 옷을 입은 여인이 편지를 읽는 모습'과 반 메이거런의 '책을 읽는 여인'의 비슷한 인물을 비교한 그림. 두 작품 모두 현재 암스테르담 레이크스 박물관에 소장


2016070101000304500018761.jpg 네덜란드의 거장 요하네스 페르메이르를 사칭해서 그린 한 판 메이헤런의 ‘그리스도와 간음한 여인’. 나치돌격대장인 헤르만 괴링에게 작품을 팔았다.


톰 키팅: 미술계에 대한 복수

영국의 톰 키팅(Tom Keating)은 가난한 집안에서 미술 공부를 중도에

그만둔 후 미술계의 외면에 분노하여 위작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위작임을 알리기 위해 작품에 'fugazi'(가짜)라는 단어를 흰색 물감으로 적거나,

해당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색상을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등 다양한 흔적을 남겼다.

그는 약 2,000점이 넘는 위작을 만들었으나,

기소 무효로 풀려났다.


톰_키팅4.jpg


그는 위작을 만들 때 오일이 빨리 마르도록 납 성분의 페인트를

먼저 캔버스에 칠한 후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이는 엑스레이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등

상당한 과학지식 아래 위작을 제작했다.

키팅은 주로 전통적인 베네치안 화법을 구사했는데

이는 두꺼운 오일 페인팅 느낌을 갖게 했다.

아울러 네덜란드 스타일을 즐겨 원용했다.

따라서 그가 그린 화풍에 가장 근접한 작가는 바로 렘브란트였다.

그는 화학을 잘 알았으며 그림의 오일을 분석해

무슨 재료를 쓰는 게 타당한지 소상히 알고 있었다.

심지어 크리스티 경매의 품목번호가 적혀있는

액자를 구해 위작을 만들어 팔기도 했다.


20250823_121625.jpg 톰 키팅이 그린 드가의 위작


그런데 사고는 1970년에 터졌다.

한 경매사는 경매 예정인 13개의 수채화들이 거의 테마가 비슷한 데다

그림의 배경이 모두 동일한 장소라는 데 의심을 갖게 됐다.

경매사는 이를 신문기자에게 알렸고, 키팅은 신문기자로부터 취재를 당하던 중

위작을 그려왔음을 고백하고야 만다.

1977년 키팅은 결국 사기죄로 체포됐다.

하지만 줄담배, 위작 제작에 사용하던 납을 비롯한 각종 화학약품에 장기간 노출되면서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져 재판은 중단되고 말았다.


키팅이 보유한 고도의 위작 제작테크닉이 얼마나 놀라웠던지

텔레비전에 특집방영될 정도였다.

그가 사망한 후 그의 작품들은 아이러니컬하게 수집가들의 컬렉션 대상이 돼

현재도 거래가 되고 있을 정도다.

심지어 키팅이 사망하던 해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그의 위작 204점으로 특별경매를 열었을 정도로 키팅의 기법은 실로 고난도였다.

작품이 얼마나 수려했으면 카탈로그에는 `after 세잔`이라고 까지 표기되었다.


1551581840_240818.jpg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위작과 모작, 레플리카의 차이

모작(模作): 원작을 따라 그리는 것으로, 학습이나 존경의 목적이 강하다.

레플리카(Replica): 원작자를 포함한 다른 이가 원작과 동일하게 재현한 작품이다.

위작(僞作): 고의로 타인의 작품을 진품인 것처럼 속여 제작 또는 유통하는 작품이다. 사기성이 있으며 법적 처벌의 대상이 된다.


명작을 능가한 위작은 모나리자의 위작일 것이다.

원본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1911년에 빈첸초 페루지아라는 이탈리아인이 이 그림을 훔쳐갔고,

이를 두고 "모나리자 위작"이라는 말이 돌았다.

이후 이 작품을 되찾은 후에도,

그가 만든 복제품이 원본보다 더 큰 주목을 받았다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이 위작은 대중에게 너무나 잘 알려지게 되었고,

오히려 일부는 이 위작이 원본보다 더 유명해졌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위작이 명작을 능가한 순간,

그것은 단순한 복제나 사기의 차원을 넘어서,

사람들의 기억과 감정 속에 더 깊이 각인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20250823_124225.jpg 원본 모나리자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제자가 그린 모나리자


위작의 세계는 미술사의 그림자이자 매우 인간적인 이야기가 담긴 공간이기도 하다.

위작을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가짜를 구분하는 것을 넘어,

예술 시장의 구조,

예술에 대한 우리의 인식,

그리고 완벽한 모방이 창조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https://youtu.be/-mUWjHAjMG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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