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미소를 지닌 여인이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붓끝에서 태어나 5백여 년의 세월을 건너온 모나리자,
그녀는 가로 53cm, 세로 77cm라는 작은 화폭 속에서 영원한 수수께끼 같은 미소를 머금고 있다.
하지만 이 작은 명작이 걸어온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명성이 클수록 시련도 컸던 것일까.
모나리자는 도난, 훼손, 공격이라는 갖가지 수난을 겪으며 오늘에 이르렀다.
사라진 미소, 1911년의 충격
1911년 8월 21일,
루브르 박물관은 전례 없는 충격에 휩싸였다.
모나리자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다음 날 다른 화가가 모사를 위해 찾아와서야 그 사실이 드러났으니,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가.
처음에는 사진 촬영을 위해 잠시 옮겨놓은 것이려니 했지만,
결국 도난당한 것이 확실해졌다.
용의선상에 오른 것은 의외의 인물들이었다.
시인 아폴리네르가 투옥되고, 그 유명한 화가 피카소까지 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진범은 따로 있었다.
이탈리아인 유리공 빈첸초 페루자,
그는 박물관에 유리 액자를 설치하는 일에 참여했던 터라 박물관 사정을 훤히 꿰고 있었다.
페루자의 범행 수법은 치밀했다.
휴관일 전날 청소도구 보관함에 숨어 있다가,
아무도 없는 월요일에 벽에서 액자를 떼어내고 작품만 외투 속에 숨겨 유유히 사라졌다.
2년 4개월 동안 모나리자는 피렌체의 한 아파트에서 초라하게 지내야 했다.
1913년 우피치 미술관에 팔려다가 결국 정체가 탄로나면서 프랑스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도난 사건은 모나리자에게 축복이 되었다.
전 세계 언론이 주목했고,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면서 오늘날과 같은 명성을 얻게 된 것이다.
수난이 곧 영광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1956년, 시련의 해
모나리자에게 1956년은 잊기 힘든 고난의 해였다.
그해 1월, 몽토방 박물관 순회 전시 중에 한 남성이 염산을 뿌려 작품 아랫부분이 훼손되었다.
복원을 거쳐 루브르로 돌아왔지만, 이때부터 경비가 삼엄해졌다.
경비원 2명과 조사관 1명이 상주하고, 접근을 막는 울타리까지 쳐졌다.
그해 연말, 또 다른 사건이 터졌다.
12월 30일, 볼리비아인 관람객이 돌을 던진 것이다.
다행히 유리창이 있어 큰 손상은 없었지만,
왼쪽 팔꿈치 부분 물감 조각이 떨어져 나가 덧칠을 해야 했다.
이 사건 후 보호 유리는 방탄 유리로 업그레이드되었다.
바다를 건너 당한 수모
1974년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전시에서도 모나리자는 봉변을 당했다.
전시 시작 6분 만에 장애를 가진 여성이 물감을 뿌린 것이다.
박물관의 장애인 배려 부족에 대한 항의였다고 하지만, 작품에는 죄가 없었다.
다행히 이번에도 보호 유리가 작품을 지켜주었다.
2009년에는 러시아 여성이 머그 컵을 던지는 일이 벌어졌다.
프랑스 시민권 취득의 어려움에 대한 홧김이었다고 했지만,
컵은 방탄 유리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다.
유리에는 경미한 균열이 생겼지만, 모나리자는 여전히 무사했다.
2022년, 케이크 공격
가장 최근인 2022년 5월 29일, 또 한 번의 기습이 있었다.
휠체어를 탄 채 여성으로 위장한 남성이 갑자기 일어나 방탄 유리를 깨려다가
실패하자 케이크를 문질렀다.
환경 보호에 대한 메시지였다고 하지만, 역시 작품은 무사했다.
명작의 고독한 운명
이제 모나리자를 보려면 여러 겹의 보호막을 통과해야 한다.
4cm 두께의 방탄 유리, 접근을 막는 나무 울타리, 반원형 차단막. 가까이 갈 수도 없고,
유리 반사 때문에 제대로 된 감상도 어렵다.
하지만 이것이 명작의 숙명일까.
모나리자의 수난사를 돌아보면서 묘한 역설을 느낀다.
사람들이 사랑하기 때문에 공격받고, 보호받기 때문에 더욱 멀어진다.
그 미묘한 미소는 5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지만,
그 미소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어쩌면 모나리자의 진짜 수난은 물리적 공격이 아니라,
점점 더 많은 장벽 뒤로 숨어야 하는 현실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그 앞에 서서, 방탄 유리 너머로 그녀의 영원한 미소를 바라본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진짜 걸작이란 어떤 수난도, 어떤 장벽도 그 본질을 흐리게 할 수 없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