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전시장 입구에서 스치는 빨강, 파랑, 노랑의 색점들이
마치 우주 먼지처럼 관객을 휩쓸었다.
‘호안 미로: 여인, 새, 별’ 전시장 벽면에 걸린
〈아름다운 모자를 쓴 여인, 별〉을 마주한 순간,
어린아이의 낙서처럼 자유로운 선이 눈가를 찌른다.
세 털실로 표현된 강아지 꼬리,
별을 향해 뻗은 두 줄기의 사다리-
이 단순함 속에 스페인을 대표하는 삼대 거장 중 한 명이 감춘 우주의 비밀이 스민다.
"그림이나 시는 사랑, 즉 완전한 포용을 경험할 때 만들어진다."
금세공인의 아들로 태어나 부모의 강요로 경영학을 공부했던 소년 미로는
신경쇠약으로 쓰러진 후 비로소 붓을 잡았다.
피카소와 달리의 그림자에 가려진 그는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별을 그리는 화가였다.
1937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추수〉를 출품하며 독재에 저항했고,
프랑코 정권 아래서도 붉은 점과 푸른 선으로 스페인의 맥박을 기록했다.
그의 화폭은 전쟁의 그을음을 빗겨난 우주선 같았다.
위 '추수하는 사람'은 사라졌고 지금은 파리 만국박람회 전시 당시의 사진만 남아 있다.
하지만 작품이 사라졌다고 해서 미로가 이 그림에 담고자 했던,
불의에 항거했던 카탈루냐의 정신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해방된 기호’에서는 붓 대신 손가락으로 그린 〈여인 III〉이 관객을 맞는다.
캔버스를 바닥에 놓고 물감을 흘리는 잭슨 폴록식 제작법은
우연성의 미학을 추구했으나,
미로에게 물방울의 궤적은 철저한 계산 아래 통제된 폭발이었다.
〈2+5=7〉 앞에서 한 청년이 중얼거렸다.
“왜 7일까?” 미로의 대답이 귓전에 맴돈다.
“2 더하기 2는 4가 되지 않아.”
그는 수학적 논리를 거부하며 창문(窓)이라 대답하는 아이의 상상력을 예찬했다.
이 작품은 고정관념의 감옥을 부수는 추상의 망치다.
그의 작품들을 꼭 어린아이가 낙서를 한 듯 단순화된 표현을 한다.
3개의 선으로 털을 표현한다든가 간단한 선으로 별과 강아지,
우주를 표현한 것도 눈에 띈다.
초현실주의의 기본 모티브는 무의식적인 세계를 통해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내 고된 현실을 벗어나는 것이다.
무서운 전쟁을 겪었어도 그의 작품에는 유머가 깃들어 있다.
별과 새에 대한 상징은 거의 모든 작품에 나타난다.
별은 사람의 정신을 상징하는데,
미로는 별의 내부에서 발산되는 빛이 모든 것을 움직인다고 생각했고
그로 인해 세상의 혼돈과 평온이 동시에 만들어진다고 봤다.
새는 천상과 지상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존재로
그의 우주론에 지상과 천상의 연결은 중요한 요소이다.
고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그의 욕구가 반영된 것이다.
미로는 ‘2 더하기 2는 4가 되지 않아’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그림은 상상력을 풍요롭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그림을 보다 보면 예술가들은 우리가 보는 이 세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상의 오브제, 예술의 변신
〈탈출하는 소녀〉는 수도꼭지 머리의 기괴한 조각이다.
로스트 왁스 기법으로 주조된 청동은 물이 솟아오르듯 아이디어가 분출하는 순간을 포착했다.
미로는 산책길에서 주운 돌과 낡은 그릇을 ‘손 보테르’ 작업실에 쌓아두었다.
손주들이 증언하듯 “할아버지는 항상 쓰레기 더미를 안고 돌아왔어요”.
그의 예술혼은 폐품을 별로 승격시키는 마법이었다.
전쟁의 상흔, 검은 색채의 승리
스페인 내전의 공포가 스민 〈달빛 아래의 카탈루냐 농부〉에서
검은 선은 폭탄 산화 자국을 닮았다.
그러나 초록색 밭고랑은 생명력으로,
붉은 점은 저항의 깃발로 빛난다.
미로는 암흑을 단죄하지 않았다.
오히려 “움직이지 않는 것이 움직이는 것보다 장대하다”고 속삭이며
고통을 우주적 서사로 승화시켰다.
전시장을 나서며 진라면 패키지가 떠올랐다.
2018년 콜라보로 삽입된 그의 작품은 라면 수프 속에서도 별을 노래하고 있었다.
미로의 예술은 몽마르트르 화실에서 일상의 밥상까지,
고통을 색채로 치환하는 알케미스트의 연금술이었다.
그의 유언이 공명한다.
“자유를 정복하는 것은 간소함을 정복하는 것이다.”
오늘도 그의 푸른 별은 전쟁의 어둠 위에서 회색도시를 향해 윙크한다.
고통은 검은 점이 되고, 희망은 붉은 선이 되어
한 폭의 우주를 그린다-호안 미로의 붓끝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