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턱을 오른팔에 괴고 주먹을 입에 댄 채 깊은 사색에 잠긴 한 남자.
근육이 긴장되어 있고, 온몸이 웅크리고 있다.
마치 세상의 모든 고민을 짊어진 듯한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어낼까.
오귀스트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단순한 조각상을 넘어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던지는 작품이다.
혁신의 시작
1904년,
흙먼지가 가득한 파리의 한 작업실.
파리시 공무원이 십여 년 전 의뢰했던 조각 작업의 취소를 통보하자,
수염이 덥수룩한 조각가는 오히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드디어, 온전히 내 것이 됐군."
그 순간 '생각하는 사람'은 정부의 주문품이 아닌,
순수한 예술가의 혼이 깃든 작품으로 거듭났다.
로댕이 살던 19세기는 조각이 깨뜨릴 수 없는 공식에 갇혀 있던 시대였다.
신화의 신과 영웅, 성경의 인물들이 완벽한 8등신 몸매와
꽃다운 얼굴로 구현되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그러나 로댕은 이 모든 관습을 뒤엎었다.
그가 조각한 것은 신도 영웅도 아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지옥의 문에서 태어난 사색
원래 '생각하는 사람'은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받은 대작 '지옥의 문'의 일부였다.
지옥의 참상을 바라보며 고뇌하는 시인 단테의 모습으로 구상되었던 이 작품은,
1888년 독립된 조각으로 확대 제작되면서
특정 인물을 넘어 보편적인 '사색하는 인간'의 상징이 되었다.
릴케는 이 작품을 보고 "온몸이 머리가 됐고,
혈관에 흐르는 모든 피는 뇌가 됐다"고 표현했다.
실제로 작품을 자세히 보면, 그의 발가락까지도 긴장되어 있고,
등과 어깨의 근육들이 생각의 무게에 짓눌려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는 사유가 단순히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온 존재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로댕의 철학을 보여준다.
추함 속에서 찾은 진실
로댕의 혁신은 '추함'을 예술의 본질로 받아들인 데 있었다.
못생겼으면 못생긴 대로, 비루하면 비루한 대로 둔 채,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인체 비례를 무시하고 과감하게 확대했다.
그에게 추함은 보정 없이 쿨하게 내보여야 할 예술의 본질이었다.
이러한 접근은 당시 사람들에게 충격이었다.
'칼레의 시민'을 본 이들은 영웅적 희생을 한 시민들을 거지꼴로 표현했다며 분노했고,
'발자크' 상은 너무 못생겼다는 이유로 인수가 거부되었다.
하지만 로댕은 흔들리지 않았다. "매 순간 치열하고, 진실해야 합니다.
당신의 뜻이 기성 관념과 상반돼도 당신이 느낀 점을 말하는 데 주저하지 마세요."
한국 땅에 뿌리내린 사색
놀랍게도 전 세계에 단 28개만 제작된 '생각하는 사람'의 진품 중 두 점이 한국에 있다.
과거 삼성 로댕갤러리(현재의 플라토, 2016년 폐관)에서 상설 전시되었던 작품-
현재는 호암미술관 수장고에 있다.
그리고 세종시 베어트리파크에 전시된 15번째 에디션은
한국이 로댕의 예술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국가임을 의미한다.
세종시의 정원에서 만나는 '생각하는 사람'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시대에 깊은 사색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이 작품은,
조용한 공원에서 깊은 울림을 준다.
영원한 질문
로댕은 1917년 "나는 신이다"라는 유언을 남겼다.
하지만 그가 신이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그는 인간의 고뇌와 열정,
추함과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조각으로 빚어낸,
인간 영혼의 가장 깊은 곳을 읽어내는 예술가였을 뿐이다.
'생각하는 사람' 앞에 서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질문하게 된다.
과연 나는 무엇을 생각하며 살고 있는가?
내 삶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이 작품이 1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로댕이 조각 속에 새겨넣은 것은 단순한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이 마주해야 할 영원한 숙제였던 것이다.
그의 작품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한다.
잠시 멈추어 생각해보라고.
그리고 그 사색의 깊이가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