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리버풀에서 태어난 폴 모리슨은 참으로 독특한 화가다.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한 가지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바로 흑과 백, 오직 두 색깔만으로 세상을 그려내는 것이다.
현대 미술이 점점 더 화려하고 자극적인 색채로 눈길을 끌려 할 때,
그는 오히려 가장 근본적인 대비로 돌아갔다.
그의 작업실을 상상해본다.
컴퓨터 스크린 앞에 앉아 디즈니 만화에서 발견한 한 장면,
19세기 식물도감에서 스캔한 꽃 한 송이,
북유럽 회화 속 나무 한 그루를 수집한다.
서로 다른 시대와 장소에서 온 이미지들이 그의 손을 거쳐
하나의 새로운 세계로 재탄생한다.
마치 시인이 서로 다른 경험의 파편들을 하나의 시로 엮어내듯이.
모리슨의 풍경에는 사람이 없다.
그 넓고 신비로운 정원에는 오직 식물들만이 존재한다.
처음엔 고요하고 평화로워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묘한 불안감이 스며든다.
너무 완벽하고, 너무 정적이며, 너무 아름답다. 마치 인간이 사라진 후의 세상 같다.
그곳에서는 성장과 생명, 그리고 죽음이라는 자연의 원초적 드라마만이 영원히 반복되고 있다.
『Black Dahlias』를 보며 나는 한참을 서 있었다.
검은 달리아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데,
그 검은 색이 단순히 어둠을 의미하는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색을 흡수한 완전함,
혹은 모든 가능성을 품고 있는 무한함 같았다.
모리슨이 추구하는 것은 단순함이 아니라 순수함이었다.
색채라는 수식어 없이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최근에는 금박과 은박을 사용한다고 한다.
흑백의 세계에 금속의 반짝임이 더해진 것이다.
반사와 거울이라는 새로운 주제를 통해,
그는 우리가 보는 것과 실제 존재하는 것 사이의 관계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폴 모리슨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이것이다.
복잡하고 소란스러운 세상에서 잠시 멈춰 서서,
가장 단순한 것들의 아름다움을 다시 발견할 수 있는 순간을.
흑과 백만으로도 충분히 깊고 풍부한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그는 조용히 묻고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