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으로
"한국에서 경제 재건을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1955년 유엔 한국재건위원회 특별조사단장으로
한국을 찾은 인도의 매논의원이 한 말이다.
한국전쟁을 지휘했던 맥아더 장군마저
"한국이 국토를 복구하는 데 100년은 더 걸릴 것"이라고 단언했으니,
당시 세계가 바라본 한국의 미래는 그야말로 절망 그 자체였다.
그런데 정말로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어났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오줌통에서 희망이 자라났다고 해야 할까.
1960년대 박정희 정부는 "우리의 적은 빈곤과 부정부패와 공산주의"라며
가난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하지만 중동처럼 내다 팔 천연자원 하나 없는 한국은 막막했다.
철광석, 중석, 생사, 무연탄, 오징어가 10대 수출품이라니,
참으로 초라한 수준이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바로 오줌이었다.
1970년대 공중화장실 소변기마다 하얀 플라스틱 통이 놓여 있었고,
벽에는 "한 방울이라도 통 속에"라는 누렇게 뜬 구호가 붙어 있었다.
학생들과 군인들, 버스 승객들까지 소변을 보면
그 한 방울 한 방울을 고스란히 모아 일본으로 수출했다.
일본이 한국의 오줌을 사간 이유는 바로 유로키나제 때문이었다.
1947년 미국에서 발견된 이 효소는 굳은 혈전을 녹이는 놀라운 능력이 있었다.
뇌출혈 환자의 막힌 혈관을 뚫어주는 귀중한 의약품 원료였던 것이다.
소변 속 20가지 효소 중에서도 특히 값진 성분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기막힌 일이다.
변기에서 나오는 것을 정성스럽게 모아 수출했다니.
하지만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생존을 위한 치열한 몸부림이었고,
절망적 현실을 타개하려는 간절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당시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의 화장실은 일본대사관을 마주 보고 있었다.
그래서 항상 소변수거통에 오줌을 누울 때는
"예라 쪽발이들아, 내 오줌 잘 먹어라!" 하며
힘차게 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시절 우리는 정말 무엇이든 팔았다.
머리카락은 가발용으로, 혈액은 수혈용으로.
자존심 따위는 사치였다.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었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 된 대한민국을 보면 격세지감이 든다.
삼성과 LG의 제품이 전 세계를 휩쓸고,
K-팝과 한국 드라마가 지구촌을 들썩이게 한다.
BTS가 빌보드 차트를 석권하고,
봉준호의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휩쓸며,
오징어게임이 전 세계적 신드롬을 일으킨다.
한때 오줌을 팔던 나라가 이제는 문화를 수출한다.
한류 열풍으로 전 세계 젊은이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을 동경한다.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업에서는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가끔 서울의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를 걸으며 생각한다.
불과 50여 년 전,
이 땅의 사람들이 오줌을 모아 팔았던 그 절박함과 치열함이
오늘날의 성공으로 이어진 것은 아닐까.
절망적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끈질기게 버텨낸
그 DNA가 지금도 우리 안에 흐르고 있다.
쓰레기통에서 정말로 장미가 피어났다.
오줌통에서 희망이 자라났다.
그리고 그 희망은 이제 전 세계를 향해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있다.
이것이 바로 기적의 나라, 대한민국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