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의 복수극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최후의 심판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바티칸 시스티나 경당의

제단 벽 전체를 덮고 있는 프레스코화이다.

이 그림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에게

내리는 최후의 영원한 심판을 묘사하고 있다.

죽은 자들은 저명한 성인들에게 둘러싸인 그리스도의 심판을 받으며

각자의 운명에 따라 부활하고 하강한다.


시스티나 성당


최후의 심판에 숨겨진 진실

시스티나 성당의 거대한 벽면을 가득 채운 '최후의 심판'.

가로 13.7미터, 세로 12미터의 압도적인 화폭 안에는

391명의 인물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천국과 지옥을 아우르는 이 성화를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단순히 종교적 경외감만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는 한 예술가의 치밀한 복수극과 깊은 내면의 고백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강요된 붓질, 쌓인 원망

미켈란젤로는 무엇보다 자신을 조각가로 여겼다.

차가운 대리석을 깎아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야말로 그의 천직이었다.

그런 그에게 교황청이 내린 명령은 가혹했다.

1508년 시작된 '천지창조' 작업은 그를 거의 폐인으로 만들었다.

20미터 높이의 천장에 누워 그림을 그리는 4년간의 고행은 그의 척추를 망가뜨렸고,

시력을 잃게 했으며, 온몸에 류머티즘을 선사했다.


아담의 창조(The Creation of Adam)는 미켈란젤로의 프레스코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그려진 프레스코화 중 하나이다.


"다시는 그림을 그리지 않겠다." 그의 다짐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21년 후, 역사는 그를 다시 붓 앞에 세웠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칼 5세에게 로마를 침공당하고,

시스티나 성당이 군 막사로 사용되는 치욕을 당한 교황청은

실추된 권위를 세우기 위해 또다시 미켈란젤로를 불렀다.

거절할 수 없는 명령이었다.

가톨릭 신자로서, 그리고 교황청의 후원을 받는 예술가로서

그는 다시 한번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거대한 벽화 앞에 서야 했다.


추기경의 채찍질과 화가의 분노

작업이 시작되자 새로운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다.

교황 바오로 3세 곁의 비아지오 다 체세나 추기경은

미켈란젤로를 끊임없이 재촉했다.


"언제 끝낼 것인가?"

"왜 이리 느린가?"


추기경의 잔소리는 창작의 고통에 시달리던 화가의 마음에 독이 되어 스며들었다.

그때 미켈란젤로는 결심했다.

단순히 교황청이 원하는 성화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분노와 복수심을 화폭에 담아내겠다고.

그는 교황에게 작업 기간 동안 누구도 작업장에 출입할 수 없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교황이 이를 허락하자, 미켈란젤로는 비로소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그 자유 속에서 역사상 가장 치밀한 복수극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영화 다빈치코드


성당에 울려 퍼진 충격의 나체

작업이 거의 완성되었을 때,

교황과 추기경이 그림을 본 순간 경악했다.

성스러운 인물들이 모두 나체로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예수조차 기존의 성화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고,

사람의 가죽을 벗기는 등 과격한 묘사로 가득했다.

체세나 추기경은 분노했다.

"이런 나체들이 거룩한 장소에 어울리는가! 유흥가에나 어울리는 그림이다!"

하지만 추기경의 진짜 분노는 나체 때문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얼굴이 그림 속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Last_Judgement_(Michelangelo).jpg 최후의 심판 미켈란젤로프레스코 벽화1,370 x 1,200 cm시스티나 성당, 바티칸


지옥의 차신이 된 추기경

미켈란젤로의 복수는 정교했다.

그는 체세나 추기경의 얼굴을 지옥의 가장 깊은 곳,

지옥의 심판관 미노스로 그려 넣었다.

당나귀처럼 늘어진 귀, 괴상한 얼굴, 몸을 층층 두른 뱀이 급소를 공격하는 모습.

주변에는 흉측한 마귀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신성한 성당에서 일하는 추기경이 예수 근처가 아닌 가장 아래,

가장 악에 가까운 존재로 표현된 것이다.


추기경은 교황 바오로 3세에게 자신의 얼굴을 빼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교황은 거절했다.

"체세나 추기경님이 연옥에만 계셨어도 제가 어떻게 해보겠는데,

사람인 제가 지옥에서 구원하기란 불가능합니다."

교황의 말은 차갑고 냉소적이었다.


5.jpg 바보의 상징인 당나귀 귀를 그려 넣고 미노스의 거시기는 뱀이 물고 있게 그렸다.


교황을 향한 은밀한 복수

교황이 그림 수정을 거부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예수의 오른쪽,

천국의 열쇠를 든 사도 베드로의 얼굴이 바로 자신의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연옥도 지옥도 아닌 예수 바로 옆에 자신이 그려져 있는 것에

만족한 교황은 수정을 요구했다가 자신도 지옥에 그려질까 두려워했을 것이다.


4 (1).jpg 천국의 열쇠를 들고 있는 베드로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교황에게도 복수를 숨겨놓았다.

교황이 미사를 집전하는 제단의 위치를 계산해,

교황이 미사를 마치고 뒤돌아서면 마치 지옥문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보이도록 지옥문의 위치를 배치한 것이다.

대놓고 교황을 지옥에 그리지는 않았지만,

그림의 위치를 이용한 영리한 복수였다.


텅 빈 껍데기 속의 자화상

'최후의 심판'에는 복수뿐만 아니라 미켈란젤로 자신의 복잡한 내면도 담겨 있다.

예수의 발 쪽, 회색 수염의 인물이 들고 있는 텅 빈 살가죽 안에는

미켈란젤로 자신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녹아내린 듯한 살가죽의 모습은 오랜 그림 작업으로 만신창이가

된 자신의 몸과 우울하고 지친 내면을 상징한다.


〈최후의 심판〉 중 바르톨로메오 부분도.jpg 〈최후의 심판〉 중 바르톨로메오 부분도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 살가죽이 천국과 지옥 사이에 위치한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종교개혁이 활발했던 16세기,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새로운 변화의 물결 앞에서 갈등했던

미켈란젤로의 종교적 고민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신념을 고수할 것인가,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일 것인가.

그의 영혼은 천국과 지옥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예술가의 마지막 저항

결국 미켈란젤로가 사망한 후,

성직자들은 나체들을 가리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의 제자 다니엘레 다 볼테라가 모든 인물에게 옷을 그려 넣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미켈란젤로의 복수와 고백은 영원히 그 벽면에 새겨졌고,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그 숨겨진 이야기들을 발견하며 감탄하고 있다.

'최후의 심판'은 단순한 종교화가 아니다.

그것은 한 예술가가 권력에 맞선 마지막 저항이자,

자신의 고통과 갈등을 담아낸 고백록이다.


391명의 인물 하나하나에 담긴 미켈란젤로의 마음을 읽어나가는 일은

마치 500년 전 한 천재의 내면을 엿보는 것 같은 전율을 선사한다.

오늘도 시스티나 성당을 찾는 수많은 방문객들은

그 거대한 벽화를 올려다보며 경외감을 느낀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안다.

그 성스러운 화폭 안에는 한 인간의 분노와 슬픔,

그리고 굴복하지 않는 예술가 정신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미켈란젤로의 복수는 그렇게 완성되었고,

그의 예술은 영원불멸의 생명을 얻었다.


8.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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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Haydn The Creation Part One - Full Score / No.1 ~ 2 / 하이든의 천지창조

https://youtu.be/cWG_ogpitf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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