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의 다비드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2023년 미국의 한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해프닝은

예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걸작 중 하나를 두고 벌어진

우리 시대의 인식 지형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학부모들은 수업 시간에 보여 준 다비드상의 사진을 나체로

표현되었다는 이유로 음란물이라 주장했고,

결국 교장이 해고되는 사태로까지 이어졌다.

이 소식은 피렌체 시장과 미술관장이 직접 나서 항의한 학생과

학부모를 미술관으로 초청하겠다는 의외의 대응으로 이어졌다.


33.jpg 피렌체 출신인 마테오 렌치(오른쪽) 전 이탈리아 총리와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가 2015년 1월 23일 정상회담을 마친 뒤 미켈란젤로의 걸작 조각상 '다비드' 앞에서 기자회견


다비드상은 미켈란젤로가 1501~1504년 피렌체 시청의 의뢰로

제작한 5.17m 높이의 대리석 조각으로,

구약성서의 소년 영웅 다윗(다비드)을 전투 전 결연한 자세로

표현한 르네상스 예술의 대표작이다.


1501년 9월 13일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미켈란젤로가

피렌체에서 ‘다비드상’을 조각하기 시작했다.

세계 조각상들 중 가장 거대하고 유명한 누드인 ‘다비드상’은

원래 다른 조각가들이 손을 대다 만 채로 25년 동안 방치한

어정쩡한 상태의 대리석 이었지만 26세의 청년 미켈란젤로가

5.5m에 달하는 이 거대한 대리석 기둥에 반해

이전의 역동적인 다비드 상과는 다른 조용한 위엄과

미묘한 균형의 이상적인 청년 다비드를 3년 만에 창조했다.

이 조각상에는 즉시 ‘거인’이라는 별명이 붙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거인은 성경에서 바로 이 다비드가

돌팔매로 쳐 죽인 ‘골리앗’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것이 다비드상이 처음 겪는 논란은 아니다.

1504년 작품이 완성되었을 당시에도 나체 남성상을

용인하지 않던 시대적 분위기에서 논란은 피할 수 없었다.

교회가 권력의 중심이었던 그 시대,

지옥에 빠진 존재나 추방된 죄인들만이 누드로 표현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l_2018101501001414000127873.jpg 베르니니의 ‘다윗상’(1623~1624)


그러나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는 근본적으로 기존의 다비드상과 달랐다.

종전의 작품들이 소년 다비드를 신의 은총으로

거인 골리앗을 이긴 기적의 상징으로 표현했다면,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는 건장한 청년의 모습으로 인간 그 자체의

완벽함과 강인함을 보여주었다.

5.2m에 달하는 거대한 대리석 조각은 탄탄한 근육과

섬세한 핏줄을 통해 인간 신체의 경이로움을 증명했다.


P6110980.jpg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이러한 표현은 르네상스 정신의 핵심이었다.

신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인간에 대한 탐구가 본격화되던 시대,

미켈란젤로는 풍부한 해부학 지식을 바탕으로 인간 몸의

아름다움과 가능성을 드러내고자 했다.

해부가 죽은 자에 대한 모독으로 여겨지던 시대에

예술가들은 몰래 해부를 진행하며 인체에 대한 지식을 쌓아갔다.


P6110985.jpg


다비드상은 단순한 예술 작품을 넘어 피렌체 공화국의 정치적 선전물이기도 했다.

당시 피렌체는 교회와 외부 세력의 견제 속에서도

시민의 힘으로 운영되는 공화국을 유지하고자 했다.

거대한 적에 맞서는 작은 도시국가의 상황은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와 완벽하게 일치했다.

미켈란젤로는 다비드가 싸움에서 승리한 후의 모습이 아닌,

전투를 앞두고 결의를 다지는 순간을 포착했다.

찌푸려진 미간과 부릅뜬 눈,

로마를 향한 시선은 피렌체의 적에 대한 경계와 맞서 싸우려는 의지를 상징했다.


흥미롭게도 완벽해 보이는 이 조각상은 사실 머리와

오른손이 비율에 맞지 않게 크게 조각되었다.

일각에서는 관람자가 아래에서 올려다볼 것을 고려한 기술적 선택이라 하지만,

다른 해석은 인간의 이성(머리)과 기술(손)을 강조하려는 의도적 표현이라고 본다.

미켈란젤로는 신의 기적이 아닌, 인간의 이성과 기술,

의지로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 걸작은 모두가 포기한 재료에서 탄생했다.

'거인'이라 불리던 거대한 흰 대리석은

두께가 얇고 비율이 맞지 않아 40년 동안 방치되어 있었다.

미켈란젤로는

"나는 대리석에서 천사를 발견하고 그 천사를 자유롭게 할 때까지 돌을 쪼아낸다"는

신념으로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도전에 성공했다.


오늘날 우리는 다비드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과연 이것은 단순한 나체 조각품인가,

아니면 인간 정신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걸작인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는 우리에게 예술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예술이 단순한 외양의 재현을 넘어 인간 내면의 힘과 아름다움,

도전 정신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다비드상은 500년이 지난 오늘도 여전히 생생하게 우리에게 말한다:

인간의 지성과 의지, 그리고 아름다움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야말로 진정한 예술의 본질이라고.

그것이 비록 나체로 표현되었다 할지라도,

그 안에 담긴 정신의 옷을 읽어내는 것이 진정한 예술 감상이 아닐까?


베로키오의 다비드상.jpg 베로키오의 다비드상


https://youtu.be/6l00o17DH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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