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가난한 이유

제임스의 투자 Note

by 제임스

가난은 개인의 게으름이나 능력 부족 때문일까?

흔히 우리는 가난을 개인적 실패로 여기며,

더 열심히 살면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가난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다.


부모의 재산이 자녀의 교육 기회를 결정하는 현실을 보라.

영국의 데미안 세넌은 옥스포드대에 합격했지만,

부모의 재정 능력 부족을 이유로 합격이 취소되었다.

한국에서도 명문대 학생 중 하위층 출신은 14%에 불과하고,

미국은 10%에도 못 미친다.

교육이라는 사다리가 있어도 그 사다리를 오를 수 있는 자격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다.


미국(왼쪽), 한국(오른쪽)


더 근본적인 문제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에 있다.

토마 피케티의 분석에 따르면,

자본 수익률은 언제나 경제 성장률을 앞선다.

부자는 일하지 않아도 자본으로 돈을 벌지만,

가난한 사람은 온종일 일해도 자본가만큼 벌 수 없다.

이는 수학적 필연이다.


경제 성장률이 3%일 때 자본 수익률은 4-5%를 유지한다.

시간이 갈수록 격차는 벌어질 수밖에 없다.

현재 미국 상위 400명의 재산은 하위 60%에 해당하는

1억 8천만 명의 재산보다 많다.

전 세계적으로 상위 62명의 재산이 인구 절반의 재산과 맞먹는다.

이런 극단적 불평등 속에서 개인의 노력만으로 가난을

탈출한다는 것은 모래성 쌓기와 같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없는 걸까?

1950-1980년 자본주의 황금기를 보면 답이 있다.

이 시기에는 모든 계층이 골고루 풍요를 누렸고,

경제 성장률이 4%에 달했으며, 완전고용이 실현되었다.

비결은 정부의 적극적 개입이었다.

높은 세금과 강한 노조, 복지 정책을 통해 자본의 탐욕을 견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80년대 레이건과 대처가 등장하면서 신자유주의가 시작되었다.

"정부가 문제다"라며 규제를 풀고 세금을 줄였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불평등이 다시 심화되고, 2008년 금융위기까지 초래했다.

자본의 자유가 늘어날수록 우리의 가난은 깊어졌다.



우리가 가난한 이유는 게으르거나 무능해서가 아니다.

자본 수익률이 경제 성장률을 앞서는 구조적 모순 때문이고,

이를 견제해야 할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난은 자연 현상이 아니라 정치적 선택의 결과다.


해법은 명확하다.

자본에 누진세를 부과하고, 노동 소득을 늘리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상위 10% 계층에게는 강력한 세금부과를 통해 자본이득을 줄여야 하고,

중위계층 60%에게는 적정한 세금으로 상위권으로의 사다리를 쉽게 만들어줘야 한다.

하위계층에게는 복지정책보다는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줘서 중위층으로

편입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시민들이 깨어나 민주주의를 통해 자본의 탐욕을 통제해야 한다.

우리 헌법 119조 2항이 명시하듯,

경제력 남용을 방지하고 경제 민주화를 실현하는 것은 정부의 의무다.



가난은 운명이 아니다.

바꿀 수 있다.

다만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안 되고, 집단적 행동과 정치적 의지가 필요하다.

자본주의의 탐욕을 민주주의로 길들일 때,

비로소 우리 모두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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