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죽음

제임스의 투자 Note

by 제임스

보이는 손


어느 날 문득 세상이 뒤집혀 있었다.

자유 시장의 수호자를 자처하던 미국이

기업의 지분을 사들이기 시작했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나는 경제학 교과서의 페이지가 한 장씩 찢겨나가는 소리를 들은 것만 같았다.


2025년,

미국 정부는 희토류 회사와 인텔의 지분을 직접 매입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를 '미국 자본주의의 중국화'라고 표현했다.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자유와 시장의 나라가 국가 개입의 길로 접어든 것일까?

미국이 길을 잃고 경쟁국을 모방하는 것일까?

하지만 나는 이 풍경 속에서 전혀 다른 무언가를 본다.

이것은 모방이 아니다.

오히려 회귀다.

500년 자본주의 역사에 은밀히 새겨져 있던 원형으로의 귀환이다.



잊혀진 기억


우리는 자본주의를 논할 때 애덤 스미스를 떠올린다.

보이지 않는 손. 자율적 시장. 최소한의 정부.

그것이 우리가 배운, 아니 믿도록 교육받은 자본주의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진짜 출생 신고서를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16세기 영국 동인도 회사를 생각해보라.

산업혁명으로 과잉 생산된 상품을 어떻하든 재고처리를 해야했다.

그러자면 식민지가 필요했고, 식민지를 관리할 동인도 회사가 필요했다.

그것은 단순한 무역 회사가 아니었다.

군대를 거느리고, 외교권을 행사했으며,

정부의 침략 전쟁이 뚫어놓은 식민지에서 무역을 독점했다.

사실상 국가의 분신이었다.

국가가 주먹으로 길을 내면 기업이 들어가 돈을 버는 구조.

이것이 자본주의의 첫 모습이었다.


런던 동인도회사 본부


미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은 정부가 경제를 설계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국가의 빚을 담보로 중앙은행을 세우고,

그 돈으로 자국 제조업에 보조금을 뿌렸으며,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매겨 경쟁을 차단했다.

19세기 말 매킨리 대통령은 더 노골적이었다.

스페인과의 전쟁으로 필리핀을 빼앗고 하와이를 합병했다.

국가가 총을 들고 나가 시장을 열어주면,

민간 자본이 그 뒤를 따랐다.

레닌이 이를 '제국 자본주의'라 불렀던 이유다.



20세기 중반, 전쟁의 시대에는 더욱 극명했다.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을 치르며 미국 정부는 경제에 깊숙이 개입했다.

GDP를 넘어서는 국가 부채가 쌓였고,

이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연방준비제도를 동원해 금리를 강제로 억눌렀다.

1940년대에는 장기 금리를 2.5%에 고정시키는 수익률 곡선 제어까지 실시했다.

시장의 논리가 아니라 국가의 의지가 지배한 시대였다.


반복되는 리듬


그리고 지금,

트럼프 행정부는 과거의 모든 패턴을 다시 꺼내 들고 있다.

해밀턴의 보호무역, 매킨리의 제국주의, 전시 자본주의의 금융 억압.

이 모든 것이 하나의 공식으로 수렴한다.

R-G 성장 모델이다.

G는 경제 성장률, R은 금리다. 국가의 목표는 명확하다.

G는 최대한 높이고 R은 최대한 낮추는 것.

정부가 빚을 내어 인프라와 첨단 제조업에 직접 투자하면 G가 오른다.

동시에 다른 나라들을 압박해 미국에 투자하게 만든다.


한편으로는 스테이블코인으로 국채를 매입하게 하고,

은행 규제를 완화해 국채 보유를 유도하며,

중앙은행의 힘으로 금리를 억제한다.

R을 낮추는 것이다.


이 전략의 중심에 국부 펀드가 있다.

2025년 2월, 트럼프는 관세 수입 등을 재원으로 미래 기술과 방위 산업에

국가가 직접 투자하는 국부 펀드 설립을 선언했다.



사실 이것도 새로운 발명품은 아니다.

미국에는 이미 원조 국부 펀드가 있었다.

국방고등연구계획국, 다르파(DARPA)다.

1957년 소련의 스푸트니크 충격 이후 만들어진 이 조직은 수익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

"필요가 생기기 전에 국가의 필요를 미리 그린다"는 원칙 아래,

당장 돈이 되지 않아도 국가의 미래에 필수적인 기술에 묻지마 투자를 했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인터넷, GPS, 스텔스 기술, 음성 인식, 드론.

우리가 사용하는 거의 모든 현대 기술이 다르파에서 나왔다.

인텔의 첫 고객도 다르파였다.


진짜 목표


그렇다면 왜 지금인가?

왜 미국은 다시 국가 자본주의라는 낡은 옷을 꺼내 입는가?

답은 간단하다. 공급망이다.


과거에는 전 세계가 하나의 분업 체계로 연결되어 있었다.

미국이 설계하고 중국이 만들었다.

효율적이었지만 위험했다.

미국과 중국이 적이 된 지금, 서로에 대한 의존은 취약점이 되었다.

패권 경쟁 시대에 상대에게 목줄을 쥐어주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그래서 미국은 중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을 해체하고,

모든 것이 자국의 통제 아래 움직이는 새로운 공급망을 건설하려 한다.

미국 정부가 최근 지분 투자를 단행했거나 예고한 분야들을 보면 이 의도가 명확해진다.


희토류. 반도체, 전기차, 전투기 생산에 필수적이지만

중국이 생산과 매장량을 장악하고 있다.

그래서 국방부가 직접 MP머티리얼즈의 지분을 샀다.

우리 손으로 캐겠다는 선언이다.


반도체. 기술은 미국이 최고지만 생산은 대만 TSMC에 집중되어 있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전 세계 첨단 산업이 멈춘다.

그래서 인텔 지분을 매입하고 삼성전자 인수 가능성까지 언급한다.

생산 기지를 미국으로 가져오겠다는 것이다.


전력. 첨단 공장을 돌리려면 막대한 전기가 필요하지만 미국은 전력이 부족하다.

그래서 한수원-웨스팅하우스 원전 합작법인 지분 참여를 검토한다.

조선. 원자재를 캐고 제품을 만들어도 운송할 배가 없으면 소용없다.

현재 세계 1위 조선국은 중국이다.

적국의 배에 의존할 수 없기에,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과 일본의 조선업 활용을 모색하고

재무장관이 직접 조선업을 정부 투자 대상으로 언급한다.


돈의 길


나는 여기서 투자의 지도를 읽는다.

미국의 약한 고리를 보면 돈의 길이 보인다.

국가가 안달하는 곳, 명운을 걸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

바로 그곳에 국부 펀드의 돈, 정부의 보조금, 전 세계의 자본이 흘러들 것이다.

광물, 자국 내 반도체 생산, 전력 인프라, 조선.

이 네 분야가 앞으로 10년, 20년을 지배할 부의 기회가 될 것이다.


회귀의 의미


결국 이것은 중국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은 자본주의 탄생 때부터 자신의 DNA에 새겨져 있던

국가 주도 모델로 회귀하고 있을 뿐이다.

보이지 않는 손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 국가의 보이는 손이 모든 것을 지휘할 것이다.


나는 창밖을 본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

우리가 배운 교과서는 이미 낡았다.

새로운 규칙이 쓰여지고 있다.

이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 속에서,

우리는 국가가 가장 아파하는 곳, 가장 급한 곳을 주시해야 한다.


역사는 돌고 돈다.

자본주의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의 거대한 원이 다시 제 궤도로 돌아오는 순간을 목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17세기에 시작된 이야기가, 새로운 장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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