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한 장의 그림 앞에 서면 묘한 감정이 든다.
분명 우리 조상들의 모습인데 어딘지 낯설고,
친숙하면서도 이국적이다. 이 특별한 느낌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림을 그린 이는 폴 자쿨레, 프랑스 태생의 화가다.
그는 어린 시절 일본으로 건너가 우키요에의 섬세한 기법을 익혔고,
성인이 되어서는 조선 땅을 자주 여행하며 눈에 비친 풍경과 사람들을 화폭에 담았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프랑스의 섬세함과 일본의 기법,
그리고 조선의 정서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의 곁에 평생을 함께한 조선인 조수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자쿨레는 그 조수의 딸을 입양해 가족으로 삼았고,
그 딸은 세 나라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이해하는 문화적 다리 역할을 했다.
이는 단순한 사제지간이나 고용 관계를 넘어선, 진정한 문화적 교류와 이해였다.
2005년, 그 딸은 양아버지의 작품들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이로써 외국인 화가의 시선으로 포착된 조선의 모습이 우리에게 되돌아왔다.
이는 역사적 아이러니이면서 동시에 아름다운 순환이다.
이 그림들은 단순한 미술 작품이 아니다.
프랑스, 일본, 조선 세 나라의 문화와 시간이 한곳에서 만나 겹쳐진 독특한 산물이다.
서구의 시각으로 동양을 바라본 오리엔탈리즘과는 다르게,
자쿨레의 작품에는 조선에 대한 깊은 애정과 이해가 담겨 있다.
그것은 아마도 조선인 조수와의 오랜 동행,
그리고 조선 딸과의 가족적 유대가 만들어낸 따뜻한 시선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그림 앞에서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우리 조상의 모습이지만 외국인의 눈을 통해 바라본 것이고,
조선의 정서가 담겨 있지만 일본의 기법으로 그려진 것이며,
동양적이면서도 서구적 감성이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문화의 힘이다.
경계를 넘나들며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전혀 새로운 아름다움이 탄생한다.
자쿨레의 그림 속에서 우리는 잊혀진 이야기들의 속삭임을 듣는다.
그것은 편견을 넘어선 사랑, 문화를 초월한 이해,
그리고 시간을 뛰어넘은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