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탄생과 회화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1839년 8월 19일,

루이 다게르가 은판 사진술을 세상에 공개했을 때,

예술사는 결정적 전환점을 맞았다.

그날 파리의 안경점들이 사진 장비를 구하려는 인파로 붐볐던 것은

단순한 기술적 호기심의 발로가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이 세상을 기록하는 방식에 일어난 혁명의 신호탄이었다.


20100816000045_0.jpg 화가였던 다게르는 10여 년 연구 끝에 은판사진술을 완성


폴 들라로시가 "이로써 오늘부터 그림은 죽었다!"고 절규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르네상스 이후 수백 년간 화가들이 쌓아온 사실적 묘사의 기예가

기계적 장치 하나로 순식간에 대체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특히 초상화가들의 타격은 심각했다.

1849년 파리에서만 10만 장의 초상사진이 촬영되고,

런던의 사진관이 몇 년 새 12개에서 150개로 급증했다는 사실은

사진이 거둔 압도적 승리를 말해준다.

수백 명의 화가가 직업을 바꾸거나 사진관의 소도구 담당자로 전락했다는 기록은

당시 화가들이 겪었던 실존적 위기의 규모를 짐작게 한다.


666.jpg 최초의 사진, 조제프 니세포르 니엡스 (Joseph Nicephore Niepce) 그라의 집 창 밖 풍경, 1826년경,


999.jpg 최초로 찍은 인물사진 ‘구두닦는 신사와 구두닦이 소년, 1838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사진의 등장은 회화를 죽음으로

이끈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화가들은 곧 사진을 단순한 경쟁자가 아닌 강력한 협력자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화가들은 사진을 참고하여 모델의 긴 포즈 시간을 줄이고

보다 정확한 묘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단순한 편의성의 문제를 넘어,

화가가 기계적 재현에서 벗어나 본질적 표현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를 제공했다.


더욱 흥미로운 변화는 드가와 같은 화가들에게서 나타났다.

그는 머이브릿지의 연속사진을 통해 인간의 눈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말의 역동적 움직임을 탐구했다.

<경마장에서>와 같은 작품에서 드가는 사진적 시각을 회화에 도입하여

순간의 생생함을 화폭에 담아냈다.

화면 밖으로 잘려나간 마차와 인물들,

의도적으로 비대칭적인 구도는 전통 회화에서는 상상할 수 없던 새로운 미학을 창조했다.


1.jpg 경마장에서, 에드가 드가, 1876~77년


사진의 등장은 회화에게 본질적 질문을 던졌다.

현실을 똑같이 베끼는 것이 예술의 목적이라면,

그 역할을 사진이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다.


그렇다면 회화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근본적 물음 앞에서 화가들은 새로운 답을 찾아야 했다.

그 결과 인상주의가 탄생했고,

이후 표현주의, 입체주의, 추상미술로 이어지는 현대미술의 거대한 흐름이 시작되었다.


사진이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회화를 모방의 예술에서 해석의 예술로 전환시킨 것이다.

화가들은 더 이상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옮기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만의 시각으로 세상을 재해석하고,

내면의 감정과 사상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색채는 사물의 고유색에서 벗어나 화가의 감정을 드러내는 수단이 되었고,

형태는 현실의 재현을 넘어 정신의 표현이 되었다.


결국 사진의 발명은 회화의 죽음이 아니라 회화의 진정한 탄생을 의미했다.

기계적 재현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난 회화는 비로소 순수한 예술로서의 자격을 획득했다.

오늘날 우리가 현대미술의 다양성과 창조성에 감탄할 수 있는 것도,

170여 년 전 한 발명가가 은판 위에 빛의 흔적을 정착시키는 방법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렌즈가 붓을 만난 그 순간, 예술은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했던 것이다.


이러한 미술사는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AI의 활용에 접목해야 하지 않을까?



https://youtu.be/IjfoKvJZ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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