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유리 피메노프(Yuri Pimenov, 1903-1977)의 그림을 보면,
마치 20세기 소비에트 연방의 거리를 걷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의 화폭에는 혁명의 열기와 건설의 꿈,
그리고 일상의 소박한 아름다움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펼쳐진다.
피메노프는 소비에트 리얼리즘의 대표 화가로 분류되지만,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것은 단순한 이데올로기적 선전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다.
특히 그의 대표작 「새로운 모스크바」(Новая Москва, 1937)는 변화하는 도시의
역동성을 여성의 시선으로 포착한 걸작이다.
자동차 안에서 바라본 모스크바의 풍경은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감으로 가득하다.
171×147cm의 대형 캔버스에 펼쳐진 밝은 색채와 대담한 구도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생동감을 전한다.
그의 그림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여성을 그리는 방식이다.
피메노프의 여성들은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주체로 그려진다.
초기 작품 "무거운 산업을 달라!", 1927 에서는
산업화를 상징하는 강인한 여성의 모습이,
후기 작품 "내일 거리의 결혼식", 1962 에서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여성의 당당함이 드러난다.
이들은 전통적인 여성상을 뛰어넘어 사회 건설의 동참자로서 자리매김한다.
색채에 대한 피메노프의 감각도 탁월하다.
그는 소비에트 리얼리즘의 틀 안에서도 인상주의적 색채 감각을 잃지 않았다.
특히 햇빛이 만들어내는 미묘한 색조 변화와 그림자의 표현에서 그의 예술적 역량이 드러난다.
「새로운 모스크바」에서 보이는 석양의 황금빛이나 다른 작품들에서 드러나는 투명한 공기감은
단순한 현실 묘사를 넘어선 서정적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피메노프의 작품이 오늘날에도 감동을 주는 이유는
그가 시대의 이상을 그리면서도 개인의 일상적 순간들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은 일상의 풍경들에서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중함을 잊지 않는 따뜻한 인간애가
그의 화폭 곳곳에 스며있다.
피메노프의 그림을 보며 우리는 예술이 어떻게 시대를
초월한 감동을 줄 수 있는지를 깨닫는다.
그의 작품은 단순히 과거의 기록물이 아니라,
희망과 꿈을 잃지 않았던 한 시대의 증언이자,
인간의 아름다운 모습에 대한 영원한 찬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