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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빛의 향기, 달항아리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2023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한가위 보름달 같은

한국의 달항아리가 65억 원에 낙찰되었다.

빌 게이츠와 BTS RM이 소장하고, 세계적 미술관이 전시하며,

주요 외신이 주목하는 이 대형 백자는 이제 시대와 국경을 넘는 미학의 아이콘이 되었다.


20251001_074932.jpg 65억에 낙찰된 달항아리


조선 시대에 탄생한 달항아리는 왕실과 양반 계층을 위한 고급 백자였다.

흰 빛을 뽑아내기 위해 정성어린 백토와 장인의 숨결이 필요했고,

유교적 절제의 미덕을 담아내기에 적합했다.

이후 대중화 과정에서 대형 달항아리가 등장했고,

그 둥근 형태가 보름달을 닮아 ‘달항아리’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러나 19세기 산업화와 도자 공예의 다변화 속에서 점차 사라져 갔다.


20251001_075359.jpg 다양한 현대의 달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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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이르러 미학자 고유섭과 화가 김환기가 달항아리를 재발견했다.

고유섭은 이 항아리의 모양이 보름달처럼 둥글고 순백의 광택이 달빛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달항 아리라는 예쁜 이름을 붙였다.

김환기는 “단순한 원형이 이토록 복잡하고 미묘한 미를 발산할 수 있다”며

그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이후 달항아리는 한국 미의 원형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404ad68b-b68a-4a16-9c98-859b12b1f934.jpg 김환기의 ‘항아리’(1955~56).


그것이 사랑받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우선 완벽하지 않은 형태가 지닌 아름다움이다.

두 개의 반구를 이어 만드는 과정에서 생기는

비대칭과 균열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빚어낸다.

흠결이 인간적이면서도 동양적인 여백의 미를 구현하는 것이다.

또한 단순하고 깔끔한 흰 표면은 현대의 미니멀리즘과 닿아 있다.

그래서 지금도 건축, 디자인,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영감을 주는 원천이 된다.


11131_12318_5025.jpg 아모레퍼시픽 본사 설계한 ‘데이비드 치퍼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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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레퍼시픽 본사의 건물은 달항아리의 조형성을 모티프로 설계되었고,

우리가 흔히 마시는 바나나 우유 병도 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또 현대 작가들은 이 항아리를 매개로 삶과 관계,

기억과 분단의 아픔까지 담아내고 있다.

강익중은 남과 북을 은유하며 달항아리를 화합의 상징으로,

최영욱은 그릇의 미세한 틈에 인간사의 흔적을 새기며 우리 시대의 정서를 녹여내고 있다.


20251001_091837.jpg 강익중, 달이 뜬다, 2022


한편 한지, 섬유, 은, 자개 등 다양한 재료로 재탄생하는 달항아리는

오늘날 젊은 세대에게 ‘달멍’이라는 문화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그저 멍하니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고요해지는 힘,

그것이 바로 달항아리가 지닌 본연의 미학이리라.


단순하지만 깊고, 비대칭이지만 균형 잡힌,

그래서 더욱 우리를 사로잡는 달항아리.

그것은 흙과 불이 만나 이루어낸 조선의 빛이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하는 고요한 메아리이다.



https://youtu.be/6ygS2szhW5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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