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함이 빚어낸 영원한 매력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서면,

한 소년이 고개를 반듯이 들고 피리를 부는 모습이 눈에 띈다.

에두아르 마네의 『피리 부는 소년』(1866)이다.


1.jpg 피리 부는 소년


단아한 군복과 당당한 자세의 소년은 마치 증명사진을 찍은 듯 투명한 회색 배경 앞에 홀로 서 있다.

그러나 이 그림은 단순해 보이는 만큼이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마네는 이 작품으로 예술의 혁명을 꿈꾸었지만,

당대의 냉대를 받았고,

오히려 그 단순함이 후세에 걸쳐 영원한 생명력을 얻었다.


마네가 이 그림을 그릴 때는 스페인 여행에서 돌아온 직후였다.

그는 프라도 미술관에서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특히 벨라스케스가 인물 주변의 배경을 생략하고

"오로지 공기만이 둘러싸게" 그린 기법에 매료되었다.


이 영감을 바탕으로 마네는 군악대 소년을 모델로 삼아 배경을

의도적으로 지우고 인물만을 강조한 초상화를 완성했다.

그러나 이 혁신적인 시도는 1866년 파리 살롱전에서 거부당했다.

심사위원들은 "배경이 너무 단조롭다"거나 "인물이 평면적으로 보인다"는 이유로

작품을 묵살했지만,

사실 그들은 신분 낮은 군악병을 주인공으로 삼은 대담함과

기존 미학을 거스른 구도에 충격을 받은 것이었다.


이 그림이 지닌 매력은 단순함의 힘에서 비롯된다.

마네는 검은색, 붉은색, 흰색 등 한정된 색채로 소년의 위엄을 드러내었고,

원근법을 배제한 평면적인 배경은 오히려 인물의 존재감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

특히 소년의 왼발이 그림 프레임을 살짝 벗어난 듯한 포즈는 생동감을 주며,

관객을 향한 시선은 피리를 부는 순간의 집중력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여기에는 일본 우키요에 판화의 영향도 엿보이지만,

마네는 이를 벨라스케스의 현실적 필치와 결합해 독자적인 미학을 완성했다.


흥미롭게도 이 작품의 모델을 둘러싼 논란도 그림의 이야기를 풍부하게 만든다.

공식적으로는 나폴레옹 3세 근위대 소년 병사가 모델이었지만,

일부 학자들은 마네가 자주 협업하던 여성 모델 빅토린 뫼랑을 변형해 그렸다고 주장한다.

만약 이 해석이 사실이라면,

마네는 모렝의 여성성을 의도적으로 감추고 중성적인 소년의 이미지로 재창조한 셈이다.

이는 예술가의 내적 욕망이나 사회적 통념을 비추는 흥미로운 단초가 된다.


비극적인 시작도 이 그림의 가치를 빛나게 하는 일부가 되었다.

살롱전 거부 소식에 분개한 작가 에밀 졸라는

"이렇게 간결한 필치로 강렬한 효과를 낸다는 것은 쉽지 않다"며

마네를 변호하는 글을 발표했다.


졸라는 이 작품이 "미래의 대가"를 예감케 한다고 평가했지만,

오히려 그의 글로 인해 신문사에서 쫓겨나는 희생을 겪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마네의 예언자는 옳았음이 입증되었다.

『피리 부는 소년』은 이제 오르세 미술관의 대표 작품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현대 미술이 "단순함으로 본질을 드러내는" 혁명의 시작점으로 기억된다.


오늘날 이 그림을 바라보는 우리는 소년의 피리 소리를 들을 수 없지만,

그의 당당한 모습에서 예술가의 용기를 느낀다.

마네는 배경을 지움으로써 오히려 인물의 진실을 드러내었고,

단색의 평면으로도 영원한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음을 증명했다.

『피리 부는 소년』은 비록 처음에는 문을 닫힌 듯했지만,

결국 예술의 역사를 연 하나의 열쇠가 되었다.



마네의 피리 부는 소년과 머리가 맑아지는 플루트 연주곡 모음

https://youtu.be/RfPX3sHqVyk


20250706190554_kdebhufm.jpeg 카페에서(Au café), 1878


20250707110221_xrlxxgay.jpg 카페 콩세르의 한 구석(Corner of a Café-Concert), c.187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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