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에도시대 일본에 한 화가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가츠시카 호쿠사이(1760~1849).
서양에서는 일본 미술을 대표하는 거장으로 추앙받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까운 우리나라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그림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이미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호쿠사이의 대표작 중 하나인 거대한 파도 그림은 당시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샀다.
"파도가 어떻게 저런 모양일 수 있느냐"는 조롱이 쏟아졌다.
그러나 수백 년이 흐른 뒤,
현대의 초고속 카메라가 5천 분의 1초의 순간을 포착했을 때,
사람들은 경악했다.
호쿠사이가 그린 그 파도의 형상이 실제 파도의 모습과 정확히 일치했던 것이다.
그는 육안으로 포착할 수 없는 순간의 진실을 화폭에 담아낸 천재였다.
빈센트 반 고흐는 호쿠사이의 작품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이 파도는 발톱이고, 배는 그 발톱에 잡힌 것이다.
서양 화가들처럼 모양과 색을 정확하게만 그려서는 결코 이런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
형태의 정확성을 넘어 감정과 본질을 포착하는 호쿠사이의 예술 세계를 꿰뚫어본 평가였다.
명성이 높아지자 그에게 배우려는 제자들이 몰려들었다.
호쿠사이는 이들을 위해 만화적 표현을 가미한 일종의 교과서를 만들기 시작했다.
흥미롭게도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만화'라는 단어가 바로 이때 탄생했다.
그는 단순히 완성된 작품만을 남긴 것이 아니라,
후대에 예술을 가르치는 방법론까지 창조해낸 것이다.
호쿠사이의 그림 연습 방식은 현대 일러스트레이터들의 방법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인물을 제대로 그리려면 골격을 이해해야 한다며 접골원을 찾아가 해부학을 연구했다.
예술가이기 이전에 과학자처럼 사물의 본질을 탐구한 그의 자세는,
시대를 앞서간 천재의 면모를 보여준다.
아이러니한 것은 지금 30억 원에 거래되는 그의 작품들이 생전에는
너무 저렴해서 도자기 포장지로 쓰였다는 사실이다.
호쿠사이는 죽을 때까지 가난했다.
호쿠사이는 그림을 그릴 수만 있다면 굶어 죽어도 개의치 않았다고 한다.
그는 깨진 사케병 조각을 물감 팔레트로,
병의 맨 아랫부분을 붓 세척제로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예술의 가치는 때로 시대가 지나야 비로소 인정받는다.
호쿠사이는 자신의 작품이 훗날 이토록 사랑받게 될 줄 알았을까.
파도 하나를 그리면서도 그 순간의 진실을 담아내려 했던 화가.
호쿠사이의 그림 앞에 서면,
우리는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한 천재의 깊은 시선과 마주하게 된다.
불행하게도,
1839년, 호쿠사이의 작업실이 동네 화재로 소실되었다.
그는 딸과 함께 붓만 든 채 창문을 통해 간신히 탈출했다.
당시 수천 점의 작품이 화재로 소실되었다.
'후지산 36경' 연작 중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거대한 파도가 후지산을 압도하는 극적인 구도가 특징이다. 파도의 역동적인 곡선과 그 아래 작은 배들의 대비는 자연의 위력과 인간의 나약함을 동시에 표현한다.
반 고흐를 비롯한 서양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작품이다.
일명 '아카후지'로 불리는 이 작품 역시 '후지산 36경' 연작의 일부다. 새벽 햇살을 받아 붉게 물든 후지산을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색채로 표현했다. 맑은 하늘의 푸른색과 붉은 산의 대비가 인상적이며,
호쿠사이의 색채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15권으로 구성된 스케치북 형태의 작품집으로, 사람, 동물, 식물, 풍경 등 다양한 소재를 간결하고 생동감 있게 그려냈다. 제자들을 위한 교본으로 만들어졌으며, 현대 만화의 원형으로 평가받는다.
약 4천 점의 그림이 수록되어 있으며, 호쿠사이의 관찰력과 표현력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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