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18번 노래

추억 속으로

by 제임스

얼마 전 송년회,

오랜만에 만난 전 직장 동료들과 노래방에 앉아 있었다.

친숙한 얼굴들 사이에서도 어색함은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오랜 세월이 우리 사이에 흐른 빈 공간이었을까.

동료들의 성화에 어쩔 수 없이 마이크을 들었다.



내가 고른 곡은 18번 고 최희준의 ‘하숙생’이었다.

1966년에 나온, 우리 아버지 시대의 노래다.

내 청춘의 18번은 따로 있었다.

뜨거운 열정과 분노를 음악에 실어 내던 시절,

나의 18번은 저항의 상징이었던 ‘상록수’였다.

그 곡을 부르며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우리의 목소리만으로도 역사를 움직일 수 있다고 믿었다.


세월은 유리구슬처럼 흘러 30대가 되었고,

18번은 김수철의 “왜 모르시나요”로 바뀌었다.

사무실 안과 밖을 오가며 치르는 작은 싸움들의 노래였다.

40대에는 이문세의 “거리에서”가,

50대에는 심수봉의 “난 사랑 밖엔 몰라”가 차지했다.

각 곡에는 그 시절의 내가,

그 시절의 희망과 상처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런데 어느새 60대의 18번은 ‘하숙생’이 되어 있었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라는 가사가,

젊었을 때는 그저 시적인 표현으로만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 한 줄 한 줄이 가슴 깊숙이 박혀,

때로는 숨이 턱턱 막히게 한다.


22.jpg 쿡스 메도우(Cook's Meadow) 에서 바라본 풍경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아니 부를 때마다 문득 1993년 겨울이 스친다.

친구와 함께 처음으로 미국 여행을 떠났을 때다.

LA의 한인 여행사를 통해 요세미티 단체 관광을 하게 되었고,

버스에는 대부분 서울에서 온 은퇴하신 분들이 타고 계셨다.

지루하게 달리는 버스 안에서 가이드가 손님들에게 노래를 시켰다.

그때 한 노신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 ‘하숙생’이었다.


그는 유명 대학 총장을 역임하셨고,

미국에 사는 아들 부부를 보러 왔다고 했다.

단정함과 품격 있는 태도에도,

그의 노래에는 깊은 회한이 서려 있었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길에/

정일랑 두지말자 미련일랑 두지말자/

인생은 나그네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없이 흘러서 간다.'

(최희준의 '하숙생' 가사 1절)


그는 노래를 마치고 마이크를 내려놓는 그 순간, 눈가를 붉혔고,

우리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젊은이들! 세월은 금방 지나가네. 멋지게 사시고 화이팅 하세요!”


그때의 나는,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한편으로는 의아했다.

‘성공한’ 그분에게 무엇이 그리도 아쉽고, 덧없어 하는 것일까?

나도 저렇게 늙게 되면, 그렇게 후회에 가득 차게 될까?

그런데 지금, 그 노신사와 비슷한 나이가 되어 보니 그의 그 한마디가,

그 노래가 부르던 간절함이 비로소 이해된다.


66년 신세기레코드에서 발표한 독집 음반에는 총 12곡 수록 중 '하숙생'과 '불타는 청춘'이 재킷 앞 뒷면을 장식했다. 이후 '맨발의 청춘'까지 1960년대를 풍미했다.


‘하숙생’의 가수인 고 최희준 씨는 서울대 법대 재학 중 학교 축제에서

노래로 입상하며 음악의 길을 걸었다고 한다.

법조인이 아닌 가수로서의 길,

그가 어떤 꿈을 품고 이 노래를 불렀을까.

‘하숙생’과 ‘불타는 청춘’은 그의 첫 음반 자켓을 앞뒤로 장식했고,

‘맨발의 청춘’과 함께 60년대를 풍미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도,

수많은 이의 가슴에 ‘인생 곡’으로 남은 것은 결국 ‘하숙생’이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모두는 인생이라는 긴 여정 속에서,

때로는 하숙생처럼 떠도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젊음은 우리에게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우리가 세상의 주인공이라는 착각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세월은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우리에게 진실을 알려준다.

우리는 단지 이 넓은 세상을 잠시 스쳐 지나가는,

작은 나그네에 불과하다는 것을.



마이크를 놓으며 스크린을 바라본다.

노래가 끝났다는 문구가 떠있지만,

가슴속에선 “공수래 공수거(空手來空手去)”의 여운이 맴돈다.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돌아간다는 그 말이,

이제는 무겁게 다가온다.

노래방 작은 방 안에는 나이 지긋한 동료들의 박수 소리가 가득했다.

그들의 눈에도,

아니 우리 모두의 눈에도 인생이라는 나그네길의 쓸쓸함과

아름다움이 함께 스며들어 있는 것만 같았다.


"당신의 애창곡은 무엇입니까?"



** 18번 곡(애창곡)의 유래

1840년 일본 가부키 배우 이치카와 단주로가

자신의 대표작 18편을 선정해 발표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이후 "자신 있는 장기"를 지칭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일제강점기 일본 문화의 영향으로 "애창곡"을 대신해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현재는 순화어 "애창곡"으로 대체하는 것이 맞다.



https://youtu.be/8MzHnUjrxZ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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