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꽃과 자연으로 가득 채워진 화면,
자유분방하게 흐르는 유려한 곡선.
알폰스 무하(1860~1939)의 그림 앞에 서면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에 빠진다.
20세기 초반 보수적이던 예술계에서 그는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독특한 화풍으로 시대를 초월한 감동을 선사했다.
현대 일러스트의 창시자이자 시대를 대표하는 국민 화가로 불리는 무하.
그의 예술 여정은 좌절에서 시작되었다.
프라하 미술 아카데미의 냉혹한 불합격 통보를 받은 청년 무하는 포기하지 않았다.
극장 세트 견습생으로 들어가 한스 마카르트를 만나며
자신만의 화풍을 조금씩 만들어갔다.
그리고 1894년 크리스마스, 운명적인 순간이 찾아왔다.
당대 최고의 연극 배우 사라 베르나르의 연극 '지스몽다' 포스터 제작 의뢰였다.
촉박한 일정, 휴가를 떠난 정규 디자이너들, 그 틈새에서 무하는 기회를 붙잡았다.
세로 2미터가 넘는 웅장한 크기에 나뭇잎을 든 여인,
아치 형태로 삽입된 이름,
과감한 구성의 이 포스터는 파리를 뒤흔들었다.
거리에 붙은 포스터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사람들은 인쇄 업자를 매수해서라도 무하의 작품을 얻으려 했다.
단 한 장의 그림으로 무하는 전설이 되었다.
이후 무하에게 쏟아진 것은 담배, 향수, 샴페인 등
다양한 상품 광고와 잡지, 연극 포스터 의뢰였다.
마침 젊은 예술가들 사이에서 불고 있던 아르누보 운동은 무하의 날개가 되었다.
굵은 선과 부드러운 파스텔톤, 자유분방한 인물 배치로 완성된
'무하 스타일'은 거리 곳곳을 그의 전시장으로 만들었다.
그는 특정 소수만 누리던 예술을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예술로 바꾸어놓았다.
하지만 상업적 성공 속에서 무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제국주의 아래 고통받는 고향 체코와 슬라브 민족을 생각하며,
그는 예술에 철학과 정체성을 담기 시작했다.
유년 시절부터 간직한 종교적 신앙과 슬라브인으로서의 자부심이 작품에 스며들었다.
성 비투스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디자인은 고향을 향한
그의 사랑이 집약된 말년의 걸작이었다.
말년의 무하는 화려한 포스터 대신 민족의 역사와 정신을 담은
웅장하고 비장한 작품들을 그렸다.
1939년, 독일군 점령 당시 슬라브 민족의 이야기를 담던 그는 체포되어 신문을 받았고,
악화된 건강으로 7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대중을 위한 예술과 민족을 위한 예술,
두 세계를 모두 품었던 알폰스 무하.
그의 작품은 오늘도 우리에게 아름다움과 자유,
그리고 정체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