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강아지는 오랫동안 예술가들의 영감의 원천이었다.
충실한 동반자이자 사랑스러운 친구인 강아지는 캔버스 위에서,
사진 속에서, 그리고 다양한 예술 매체를 통해 인간과의 특별한 관계를 증명해왔다.
오늘날 전 세계의 작가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강아지를 작품의 주인공으로 삼으며
독특한 예술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영국의 거장 데이비드 호크니는 자신이 키우던 닥스훈트 두 마리를 무수히 그렸다.
잠든 모습, 웅크린 모습, 물 마시는 모습 등 일상의 소박한 순간들을 포착한
그의 그림들은 반려동물을 향한 깊은 애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 그림들을 모은 작품집 'The Dog Days'는 호크니 자신도
좋은 모델은 아니라고 인정했지만,
작은 소리에도 어디론가 사라지는 강아지들의 순수한 본성이
오히려 그림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그는 회화뿐만 아니라 사진과 디지털 미디어 작업까지 넘나들며
현대미술의 경계를 확장한 작가로,
2017년 테이트 브리튼 전시회는 갤러리 역사상 가장 많은 방문객을 기록하기도 했다.
미국의 사진작가 윌리엄 웨그만은 또 다른 방식으로 강아지를 예술의 중심에 세웠다.
1970년 우연히 작업실에 풀어두었던 바이마라너 반려견 '만 레이'가 비디오에 촬영되면서
시작된 그의 작업은 50여 년간 이어져 왔다.
윌리엄 웨그만은 반려견에게 인간의 옷을 입히고 다양한 직업과 상황을 연출하여
의인화된 사진을 찍는 것으로 유명하다.
주부, 우주비행사, 변호사, 성직자 등으로 변신한 바이마라너들은
무심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며 인간 사회를 유머러스하게 풍자한다.
웨그만이 애용한 대형 폴라로이드 카메라는 무게가 106kg에 달해 야외 촬영 시에는
트럭에 싣고 다녀야 했지만, 즉석에서 인화되는 폴라로이드의 특성 덕분에 후보정 없이
매 순간 완벽한 준비를 해야 했다.
이러한 제약은 오히려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요소가 되었다.
그의 작품은 뉴욕현대미술관(MoMA)과 휘트니미술관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 소장되었으며,
NBC의 '생방송 토요일 밤'과 PBS의 '세서미 스트리트' 같은 방송 프로그램에도
소개되며 대중적 사랑을 받았다.
한국에도 강아지를 그리는 작가들이 있다.
'반하라구'라는 작가명으로 활동하는 작가는 민화풍 디지털 드로잉으로 반려동물 초상화를 그린다.
코로나로 외출이 어려웠던 시기,
먼저 세상을 떠난 자신의 첫 반려동물을 추억하고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그는
한국적 정서가 담긴 민화에 반려동물을 접목시켰다.
민화는 옛 서민들이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그린 그림이라는 점에서
반려동물을 향한 자유로운 애정 표현과 잘 어울린다.
처음에는 자신의 그림에 사람들이 반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가명을 지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자신이 그리는 강아지들에게 반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독일 표현주의 화가 프란츠 마르크 (Franz Marc, 1880-1916)는 동물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그는 1908년에 《뛰어오르는 개: 슐리크》를 그렸으며, 1912년 작품 《눈 속에 누워있는 개》 등
다양한 동물 그림을 남겼다.
그는 "동물이 인간보다 더 순수하고 더 아름답다"고 말하며
동물을 통해 순수한 영혼을 표현하고자 했다.
이암 (李巖, 1507-1566) 조선 중기에 개와 매 그림으로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왕족 출신 화가이다.
그의 작품 《화조구자도》는 현재까지 확인된 조선시대 최초의 개 그림으로 전해진다.
특이한 점은 개의 털을 묘사하지 않고 몸통을 먹으로 채워 그렸다는 것인데,
이러한 기법은 당시 중국에도 없었던 독창적인 방식이었다.
이암의 그림은 일본에까지 큰 영향을 주어,
그보다 100년쯤 뒤 교토에서 활동한 일본 화가 다와라야 소타츠의 작품에서도 그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단원 김홍도의 <단원풍속도첩> 중 "점심"에는 삽살개가 등장한다.
김홍도의 삽살개 그림은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파격의 19세기 화가, 오원 장승업이 그린 쌍구도(雙狗圖)이다.
털이 복슬복슬한 삽살개를 익살스럽게 표현했다.
아마도 저 앞에 꽃한송이 위에서 나비 한 마리가 앉아 있었는데,
그것을 보고 신나게 달려와 보니 나비가 날아가 버려서 그것을 멍하니 쳐다보는 듯 하다.
강아지를 그리는 작가들의 작품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진심이다. 단순히 귀여운 외모를 재현하는 것을 넘어,
강아지와 함께한 시간, 그들이 주는 위로, 무조건적인 사랑의 순간들이 작품 속에 녹아있다.
데이비드 호크니가 닥스훈트의 일상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윌리엄 웨그만이 만 레이를 잃은 후 4년간 새로운 반려견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한국의 작가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반려동물을 그리며 위로받았다는 이야기들은
모두 같은 감정에서 비롯된다.
현대 사회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가 천만을 넘어서며
강아지는 더 이상 단순한 애완동물이 아닌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
예술가들은 이러한 변화를 민감하게 포착하며 강아지를 통해 인간다움,
관계의 의미,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웨그만의 작품 속 의인화된 강아지들이 우리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듯,
강아지를 그리는 행위는 결국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는 과정이기도 하다.
강아지를 그리는 작가들의 작품 앞에 서면 우리는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경험한다.
그 속에는 기쁨과 슬픔, 만남과 이별, 일상의 소소함과 특별함이 공존한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이 우리가 강아지와 함께 나눈 시간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예술은 사라지는 것들을 기억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강아지를 그리는 작가들은 바로 그 순간들을 영원히 남기고 있는 것이다.
멍멍이가 화가네!!!
https://www.youtube.com/watch?v=9nkrU8D5LE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