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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을 향해 달려가는 용기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20년!

한 예술가에게 이 시간은 어떤 의미일까.

창작의 절정기를 지나 세상으로부터 잊혀진 채 보내야 했던 긴 암흑기.

그러나 쿠사마 야요이는 그 시간 속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묵묵히 자신의 점을 찍어나갔고,

마침내 호박 조각이라는 새로운 형태로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33.jpg 2010년 아이치 트리엔날레에서 호박을 든 야요이 쿠사마


쿠사마의 시그니처였던 호박은 이제 평면 캔버스를 벗어나 입체 조각으로 탄생했다.

무수한 점들이 패턴을 이루며 뒤덮인 노란 호박은 바다를 배경으로 전시되며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독특하면서도 강렬한 이 작품은 일본을 넘어 프랑스, 미국, 한국 등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20년의 침묵을 깬 이 야외 조각은 단순한 복귀가 아니라,

쿠사마가 여전히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선언이었다.


222.jpg 나오시마의 상징이 된 쿠사마 야요이의 노란 호박


열 살 때,

그녀는 종종 번쩍이는 빛, 꽃밭, 점, 그리고 그녀에게 말을 거는

호박이 등장하는 환각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이 환각들은 그녀에게 너무나 생생하게 나타나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그녀를 에워싸는 듯했다고 한다.

이 무렵,

그녀는 환각과 두려움에 대한 심리적 반응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쿠사마는 작품에서 자주 반복되는 호박이라는 반복적인 주제를 통해 두려움을 극복하고,

환각을 이해하고, 감정을 통제한다고 한다.


111.jpg 대형 조각 '호박'이 2021년 9호 태풍 루핏의 영향으로 바다에 빠져 파손됐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전성기를 맞이한 쿠사마의 태도였다.

"마침내 시대가 나를 친절하게 봐주게 되었다.

하지만 그건 별로 중요치 않다.

나는 미래를 향해 달려 나가기 때문이다."

과거의 고통도, 현재의 찬사도 그녀를 멈추게 하지 못했다.

그녀의 시선은 언제나 앞을 향해 있었고,

손은 다음 작품을 준비하고 있었다.


20251003_055442.jpg 소멸의 방


33.jpg 소멸의 방 작품에 관객들이 붙인 스티커로 또 다른 작품을 탄생시켰다.


2002년, 쿠사마는 '소멸의 방'이라는 새로운 설치 작품으로

또 한 번 예술계를 놀라게 했다.

모든 것이 하얗게 칠해진 일상적인 가정집 공간. 관객들은 입장할 때

크기와 색이 다양한 스티커 한 장을 받는다.

그리고 그것을 원하는 곳 어디든 붙일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텅 빈 하얀 공간은 무수한 색색의 점들로 뒤덮인다.

이것은 쿠사마가 환각으로 경험했던 무한히 증식하는 점의 세계를

관객이 직접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예술로 승화시켰을 뿐 아니라,

그것을 타인과 나누는 방법까지 찾아낸 것이다.


이 작품을 볼 때마다 예전에 모시립미술관 관장의 초대로

그를 찾아갔을 때 스티커를 주며 이름과 소속을 쓰게 하고

관장실의 벽면에 붙이라고 하던 기억이 난다.


20251003_073231.jpg 쿠사마 야요이와의 콜라보레이션


2012년, 쿠사마는 마크 제이콥스와 손잡고

루이뷔통 콜라보레이션을 선보였다.

당시로서는 드물었던 예술가와 명품 브랜드의 대규모 협업에

전 세계가 주목했다.

쿠사마는 마침내 예술성과 대중성, 상업성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작가로 우뚝 섰다.


오늘날 인생의 황혼기를 맞이한 쿠사마는

여전히 모든 에너지를 작품 활동에 쏟아붓고 있다.

세상이 그녀를 무시하고 아이디어를 훔쳐갔던 시절도,

정신병원에서 홀로 작업해야 했던 시간도 그녀를 꺾지 못했다.

오히려 그 역경들이 그녀의 크리에이티브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고,

더 밝게 빛나게 했다.


9999.jpg 야요이 쿠사마 - 호박 클러치 , 2017


90세가 넘은 쿠사마 야요이의 점들은 오늘도 무한을 향해 뻗어나간다.

그것은 단순한 패턴이 아니라,

멈추지 않는 창조의 의지이자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인간 정신의 승리다.

그녀가 우리에게 건네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세상이 외면해도,

시대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만의 가치를 지키며 나아가라.

그리고 무엇보다, 미래를 향해 달려가라!


9.jpeg 야요이 쿠사마 – 팽창식 호박 풍선 – 센트럴월드, 방콕, 태국, 2018


99.jpg 내가 꿈꾸었던 꿈, 예술의 전당, 2014


999.jpg 야요이 쿠사마 – 호박 , 2003, 캔버스에 아크릴


444.jpg 야요이 쿠사마 – 호박, 스테인리스 스틸 및 빨간색 우레탄 페인트, 2015


https://youtu.be/obaB6CQX4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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