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우리는 유리가 부서지는 소리를 들을 때,
무엇이 파괴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스위스 예술가 사이먼 버거(Simon Berger, 1976- )는
그 균열 속에서 빛이 태어나는 것을 본다.
원래 목수 였던 그는 일상의 도구인 망치를 들어 가장 취약한 재료인 유리를 두드려,
파괴의 행위를 창조의 예술로 승화시킨다.
그의 손에서 망치는 파괴의 도구가 아니라, 효과를 증폭시키는 확성기와 같다.
그는 자동차 전면 유리에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중 이 독특한 기법을 떠올렸다.
일반 유리는 너무 쉽게 부서지고,
건축용 유리는 너무 강해 그의 예술 캔버스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안전 유리를 선택하게 되었는데,
이 재료는 완전히 붕괴되지 않으면서도 정교한 균열 패턴을 생성해 내는 이상적인 매체였다.
그는 망치를 이용해 가깝고 짧은 타격을 가하며,
추상적인 안개 속에서 점점 사람의 얼굴이 드러나는 순간을 포착한다.
"인간의 얼굴은 항상 나를 매혹해 왔다. 안전 유리 위에서,
이러한 모티프는 그 자체의 모습을 찾아 관람자를 마법처럼 끌어당긴다.
이는 추상적인 흐림에서 구체적인 지각에 이르는 발견의 과정이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강함과 연약함이라는 이율배반적인 긴장감을 시각화한다.
멀리서 보면 한 여인의 강렬한 눈빛이 관람자를 뚫어져라 응시하는 초상화가 선명하게 보인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 그 매혹적인 이미지는
수많은 금과 날카로운 유리 조각의 혼합체로 해체된다.
빛은 이 균열들 사이에서 반사되어,
마치 초상 자체가 빛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무질서는 단순히 범죄로만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무질서는 빛의 왕국이 될 수도 있으며, 그것은 희망에 관한 것이다.
빛은 망치의 타격 속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그의 대표작인 카말라 해리스의 초상은
이러한 그의 예술 세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작품은 그녀가 깬 '유리 천장'이라는 정치적 상징과 예술의
기법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
2021년 베이루트 항구 폭발 사고 피해자들을 위한
추모 프로젝트 'We Are Unbreakable'에서 그의 예술은 깨어짊에도 불구하고
견디는 삶의 무너지지 않는 정신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
사이먼 버거는 망치를 든 현대의 연금술사이다.
그는 우리에게 가장 연약해 보이는 것 속에 숨겨진 강인함,
가장 어두운 파괴의 순간에 태어날 수 있는 빛을 보여준다.
그의 유리 초상화는 우리 자신과 우리 사회의 깨어지기 쉬운 아름다움에 대한
경이로운 메타포이자, 모든 균열 너머에 존재하는 빛에 대한 믿음의 선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