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과거제도

재미난 이야기

by 제임스

13세 소년과 83세 노인이 같은 시험장에 앉아 있다.

한 사람은 인생의 첫 도전을, 다른 한 사람은 마지막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과거제도가 만들어낸 기묘한 풍경이다.


나이도, 신분도, 그 어떤 것도 이 시험장 앞에서는 의미가 없었다.

오직 실력만이 운명을 가르는 유일한 기준이었다.

과거제도는 958년 고려 광종 때 시작되어 1894년 갑오개혁으로 폐지되기까지

약 천 년간 이어진 인재 선발 시스템이었다.


혈통과 가문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던 시대에,

능력으로 신분 상승의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혁신적인 제도였다.

실제로 조선 초기에는 평민 출신 합격자가 30~40%에 달했다는 기록이 있다.

비록 시간이 지나며 그 비율이 줄어들었지만,

과거는 여전히 희망의 사다리였다.


20251206_151155.jpg <북새선은도>는 화원화가인 한시각(韓時覺, 1621-1691 이후)이 1664년(현종5) 함경도 길주목에서 실시된 문무과 과거 시험 장면을 그린 기록화이다.


하지만 그 사다리는 너무나 가파르고 위태로웠다.

3년에 한 번 열리는 식년시, 최종 합격자는 단 33명.

영조와 정조 시대에는 응시자가 15만 명에 달해 경쟁률이 4,500대 1,

합격률은 0.02%에 불과했다.


더욱 가혹한 것은 시험 범위가 없다는 점이었다.

정치, 경제, 역사, 철학을 아우르는 자유논술형 시험이었고,

평균 답안지 길이는 무려 10미터에 달했다.

그래서 평균 합격 연령이 35세였다.

다섯 살부터 공부를 시작해도 30년이 걸리는 지옥 같은 레이스였다.


20251206_151517.jpg ‘길주과시도’(왼쪽)와 ‘함흥방방도’(오른쪽)예요. 1664년 함경도 길주에서 과거 시험이 치러지는 장면과 함흥 관아에서 시험 합격자를 발표하는 모습을 각각 그린 것이다.


그러다 보니 과거 공부는 패가망신과 통하는 길이기도 했다.

수십년 동안 생업을 접은 채 책 값, 교육비, 한양까지 오가는 교통비와 체재비만

줄기차게 드는 것이니 기둥뿌리 뽑힐 만했다.

정조 때 무신 노상추는 10년 동안 과거를 준비하며 500냥을 썼다고 하는데

웬만한 가정의 그 기간 생활비를 뛰어넘는 금액이었다.


학습량 또한 엄청났다. 사서삼경에 ‘자치통감’(294권, 요약본 50여 권), ‘사기’(130권)를

비롯해 읽어야 할 책만 1000권 이상. 그걸 100회, 1000회 읽고 외워야 했고

논술 능력과 서예도 익혀야 했다.

‘장수생’의 스케일 역시 요즘에 비할 바 아니었으니,

고종 때 선비 박문규는 83세, 철종 때 김재봉은 90세 나이로 문과에 급제했다.

실로 가슴이 먹먹해진다.


20251206_152102.jpg ‘홍패(紅牌)’는 왕명으로 발급된 과거합격증을 말하며, 보통 홍화씨 등으로 붉게 염색한 종이로 발급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명칭을 갖게 되었다.


이 극악한 경쟁 속에서 전설은 탄생했다.

이율곡은 과거를 아홉 번이나 모두 장원으로 급제한 천재였다.

1558년 별시에서는 명나라 학자들도 돌려가며 읽었다는 명문 답안을 단 3시간 만에 작성했다.

그의 별명 '구도장원공'은 그 업적을 기리는 표현이다.


하지만 가장 성공한 급제자를 꼽으라면 단연 태종 이방원이다.

과거 역사상 유일하게 급제 출신으로 왕이 된 인물이다.

아버지 이성계는 아들의 합격 사령을 기뻐하며 몇 번이나 소리 내어 읽었다고 한다.

동북면 출신 무인이 느꼈을 열등감을 아들이 씻어준 순간이었다.


20251006_182243.jpg 실제 제출한 답안


물론 과거제도에는 그림자도 있었다.

대리 시험인 '거역', 컨닝 페이퍼인 '협서', 시관의 글을 미리 공부하는 '매문' 등

온갖 부정행위가 만연했다.

이에 조선은 답안지 주인을 숨기는 '비봉제',

필사관이 다시 베껴 쓰는 '등서제' 등으로 대응했다.


1.jpg 작자미상, 19세기 그림 '평생도'의 일부. 과거시험장의 모습을 그렸다. 응시자 외에 양산을 들고 온 사람, 글씨를 대신 써 주거나 글을 대필하는 사람도 보인다.


영조는 합격자를 직접 불러 재검증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적 한계로 부정을 완전히 막지는 못했다.


1894년, 경복궁 근정전에서 마지막 과거 시험이 열렸다.

장원 급제자는 박영효.(갑오개혁의 주역이자 태극기를 처음 사용)

그는 천 년 과거 역사의 마지막 주인공이 되었다.

13세 최연소 급제자 홍제부터 83세 최고령 급제자 박문규까지,

약 2만 명의 이야기가 막을 내린 순간이었다.

과거제도는 사라졌지만 그 본질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수능, 공무원 시험, 각종 경쟁시험...

우리는 여전히 시험으로 운명이 결정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과거의 역사는 묻는다.

진정한 능력이란 무엇인가?

공정한 경쟁은 가능한가?

천 년 전 그 질문에 우리는 아직도 답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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