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데이비드 진(David Zinn)의 그림 세계는
길거리의 틈새와 균열에 피어나는 일시적인 마법이다.
그의 손길이 닿으면 평범한 보도 블록과 낙서된 벽면은
상상력이 넘치는 환상적인 세계로 변모한다.
순백의 초크와 숯이 만나 공중에 뜬 반려동물, 장난치는 외계 생명체,
걸신들린 듯 웃는 괴물들을 탄생시킨다.
그의 작품은 ‘영원’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한 줄기의 비나 수많은 발걸음에 쉽게 사라질 수 있는 덧없음이
오히려 작품에 생명력을 부여한다.
이는 모든 존재의 아름다움과 슬픔을 동시에 담아내는
우주의 법칙에 대한 조용한 수용이자,
예술이 반드시 박물관에 갇힐 필요가 없다는 자유로운 선언이다.
그는 자신의 웹사이트에서 “공공 예술은 낯선 사람을 향한 사랑의 행위”라고 말한다.
이 말은 그의 창작 태도를 명확히 보여 준다.
데이비드 진의 작품은 거리를 걷다 우연히 마주치는 사람들을 위한,
말 없는 인사이자 조용한 위로다.
지나가는 이에게 “이봐, 우리는 같은 인간이야. 너를 위해 이 작은 선물을 준비했어”라고
속삭이는 것과 같다.
그의 대표 캐릭터인 ‘나딘’은 제한된 수량의 판화로 만날 수 있지만,
길거리에 그려진 그녀의 본래 모습은 어느 날 문득 그 자리에서 사라진다.
이것이 바로 예술가가 세상에 전하는 메시지의 핵심이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소유가 아닌, 순간을 온전히 느끼고 함께하는 데 있다.
데이비드 진은 미시건 주 앤아버에서 1987년부터 독창적인 예술 활동을 펼쳐 왔다.
그는 오랫동안 상업 분야에서도 활동했지만,
그의 진정한 열정은 공공 공간을 무대로 한 창작에 있다.
그가 초크를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린 시절과 청년기 대부분을 ‘예술을 만든다는 생각’에 겁먹은 채 보냈던 그는,
오직 낙서만이 유일한 도피처였다고 고백한다.
결국 그가 길거리로 나가 덧없는 초크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완벽함에 대한 두려움에서 자신을 해방시키기 위한 행위였다.
그의 작품은 지극히 전문적인 기법으로 완성되었지만,
그 본질은 여전히 ‘낙서’의 자유로움과 순수한 기쁨을 유지하고 있다.
데이비드 진의 예술은 우리에게 묻는다.
아름다운 순간이 영원하지 않다면,
그 순간을 더 소중히 여겨야 하지 않을까?
그의 그림은 결코 우리를 그 자리에 묶어 두지 않는다.
오히려 스쳐 지나가도록 내버려 두지만,
우리가 걸어온 길과 앞으로 걸어갈 길을 더 따뜻하게 바라보게 만든다.
그의 그림은 결국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다.
일상의 틈새를 아름답게 수놓을 수 있는 우리 자신의 능력과,
그런 아름다움을 발견할 줄 아는 우리 자신의 마음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