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세계를 그리는 화가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한 주 동안 거리에서 마주친 수많은 얼굴들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을 기억할 수 있을까?

우리는 매일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과 스쳐 지나가지만,

그들 대부분은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다.

하지만 캐나다 밴쿠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 데빌(Deville)

손끝에서는 이 모든 순간들이 잉크로 부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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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빌의 작품은 멀리서 보면 마치 복잡한 문양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그 안에서 살아 숨 쉬는 수천 명의 작은 인물들을 발견하게 된다.

놀라운 점은 그녀가 단 하나의 만년필만으로 이 모든 것을 그려낸다는 사실이다.

더욱 경이로운 것은 수천 개의 인물 중 단 한 명도 같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각자의 옷차림, 자세, 행동이 모두 다르다.

작은 머리에 통통한 몸, 큰 머리카락을 가진 그녀만의

독특한 캐릭터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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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도시계획을 전공한 데빌은 디자인 아이디어를 전달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현장에서 장소의 분위기를 포착하려던 시도는

점차 그녀만의 상상 세계를 창조하는 작업으로 진화했다.


"현실 세계의 규제와 제약 없이 처음부터 장소를 디자인하는 도시 계획가의 모습"이라고

그녀는 자신의 작업을 설명한다.

그녀의 스타일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실주의에서 점점 멀어졌다.

완벽한 원근법이나 사실적인 인체 비례보다는 스타일과 감정을 더 중시하게 된 것이다.

건물을 캐릭터로 바라보는 그녀의 시각에서 장식은 보석이 되고,

지붕선은 머리카락이 되며, 창문은 눈이 된다.

모든 것이 개성을 가진 상상의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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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빌은 잉크와 물, 수채화 물감을 주요 매체로 사용한다.

특히 플렉스 닙(flex nib)을 활용해 손의 움직임으로 표현을 만들어낸다.

종이의 수평면뿐 아니라 압력의 강도로 수직적 변화도 더하며,

마치 지휘자처럼 다양한 변수들을 조율한다.

그녀가 존경하는 히에로니무스 보스나 조지 그로스, 오토 딕스처럼

특정 세계의 군상들을 그려내고자 한다.

현대 도시 거리의 가게 주인, 배달원, 인플루언서, 노숙자 같은

'공적 캐릭터들'이 그녀의 화폭에 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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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작업을 즉흥적으로 진행하는 데빌에게

펜과 잉크 드로잉의 즉시성과 휴대성은 완벽한 매체다.

머릿속에 가득한 아이디어들을 빠르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품이 완성되는 순간은 "눈에 만족스러울 때"라고 그녀는 말한다.


세상은 거대한 블록부터 작은 점까지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져 있고,

그녀의 장면들은 그 작은 점들이 제자리를 찾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매일 수천 명을 그려내는 데빌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작품은

"기발하고, 즐겁고, 인간적"이다.

그녀의 작품 속 작은 인물들은 단순한 점이나 선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스쳐 지나가며 잊어버린 수많은 이들에 대한 아름다운 기록이자 선물이다.



https://youtu.be/PdNsfoYKSr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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