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으로
30년 전,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장례 방식을 두고 동생들과 격렬하게 다투었다.
매제 중 한 명이 동생에게
"묘지를 안 쓰는 것은 상놈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말한 것이 발단이었다.
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당시는 80% 이상이 묘지를 쓰던 시절이었으니 그들의 생각도 이해는 갔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선산도 없었고, 무엇보다 관리에 자신이 없었다.
명절 때마다 찾아가 풀을 베고 제사를 지낸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설득을 거듭했지만 동생들은 쉽게 납득하지 못했다.
결국 장남인 내 의지대로 화장을 해서 납골당에 모셨다.
그때의 선택이 옳았는지 오랫동안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
얼마전, 전국의 사설 묘지공원에 있는 무덤 10기 중 3기는 연고자가
오랫동안 관리비를 내지 않아 방치된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 묘들은 처음 안장될 땐 가족 등 연고가 있었으나,
자손들의 발길이 끊기거나 무덤을 돌볼 사람이 사라지면서 주인 없는 무덤이 되고 있다.
나의 선택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세월이 흐르면서 세상은 크게 변했다.
2001년 38.3%에 불과했던 화장률은 2023년 92.9%로 급증했다.
이제는 화장이 당연한 시대가 되었고, 장례 방식도 놀라울 만큼 다양해졌다.
작년에 장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수목장으로 치렀다.
나무 아래 유골을 묻으며 생명이 생명으로 돌아가는 순환의 의미를 느꼈다.
봄이면 꽃이 피고 여름이면 푸른 잎이 무성한 그 나무를 보며,
장모님이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살아 숨 쉬는 것 같았다.
무거운 묘비석 대신 살아있는 나무가 장모님을 기억하고 있다는 생각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나와 아내는 산분장을 원한다.
올해부터 시행된 산분장은 유골을 바다나 산에 뿌려 자연으로 완전히 돌아가는 방식이다.
해안선에서 5km 이상 떨어진 바다에 유골과 생화를 뿌리면,
파도와 바람이 되어 자유롭게 흩어지는 것이다.
묘지도, 납골당도, 심지어 나무 한 그루도 필요 없이 자연 그 자체가 되는 것.
자식들에게 관리의 부담을 남기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지만,
무엇보다 자연으로 완전히 돌아가고 싶다는 소망이 크다.
장례 형태만 변한 것이 아니다.
추모 방식도 놀라울 만큼 다양해졌다.
생전에 남긴 혈액을 영구 보관하는 서비스가 생겼다.
혈액 블록에 스마트폰을 대면 고인이 남긴 음성 메시지가 재생된다.
"사랑하는 자식들에게"로 시작하는 그 음성은 물리적 거리를 넘어 언제든 고인을 만날 수 있게 한다.
메타버스 추모관과 온라인 추모 공간도 등장했다.
사진, 음성, 동영상을 저장하고 언제든 접속하여 고인을 추억할 수 있다.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스마트폰으로 고인을 만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납골당을 찾아가는 일은 쉽지 않지만,
디지털 공간에서라면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고인을 기억할 수 있다.
30년 전 그 뜨거운 논쟁이 이제는 먼 옛날의 일처럼 느껴진다.
"상놈들이나 하는 짓"이라던 그 말을 떠올리면 씁쓸한 웃음이 나온다.
지금 우리 사회는 묘지든, 화장이든, 수목장이든, 산분장이든, 혹은 디지털 추모든
각자의 가치관과 상황에 맞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고인을 진심으로 기리는 마음이다.
거창한 묘지가 효도의 증거는 아니며, 간소한 장례가 불효도 아니다.
자연으로 돌아가든, 디지털 공간에 남든, 그것은 단지 이별의 방식일 뿐이다.
30년 전의 내 선택이 옳았는지는 이제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내 마음은 장소와 형식을 넘어 여전히 이곳에 살아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