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으로
얼마 전,
딸과 아들이 집을 찾았고 가족들의 대화는
자연스레 투자 이야기로 이어졌다.
대화가 무르익을 무렵,
딸이 보여준 증권계좌에 있는 '삼양식품' 주식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작년 4월경 22만원 근처에서 매입한 주식이 140만 원으로 뛰어오른 것이다.
IMF 위기 때 파산 직전까지 갔던 회사가 라면 하나로 다시 일어서다니,
이는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다.
나 또한 라면을 즐겨 먹는 사람이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꼬불꼬불한 면발과 얼큰한 국물,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
라면은 한국인에게 단순한 식사를 넘어선 추억과 위로,
그리고 삶의 희망 그 자체이다.
1963년 9월 15일 삼양식품이 국내 최초로 라면을 선보인 지 60여 년이 지난 지금,
라면은 한국을 대표하는 K-푸드의 상징이 되었다.
라면의 기원은 1958년 일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대만계 일본인 안도 모모후쿠가 전후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발명한 치킨라면이 인스턴트 라면의 시초이다.
5년 후, 삼양식품의 전중윤 회장은 일본 묘조식품으로부터 제조 기술을 도입한다.
당시 1위 업체인 닛신식품은 기술 이전을 거부했지만,
2위 업체인 묘조식품의 오쿠이 기요스미 사장은
한국전쟁이 일본 경제 재건에 도움을 주었다는 이유로
기술을 무상으로 제공한 인물이다.
특히 수프 제조법은 임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공항에서
노트에 적어 전달할 만큼 그의 호의는 각별한 것이었다.
그러나 초기 삼양라면은 일본식 닭고기 국물 맛이었고,
가격도 짜장면 한 그릇(20원)의 절반인 10원이나 하여
서민들에게는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무엇보다 한국인의 입맛에는 너무나 밋밋한 음식이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다.
1960년대 정부는 쌀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혼분식 장려 운동을 펼치고 있었고,
박 대통령은 라면을 밀가루 식품의 대안으로 주목한 지도자이다.
시제품을 맛본 그는 "국민의 입맛에 맞게 맵게 할 수 없나"라고 말하며
삼양식품 전중윤 회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고춧가루 추가를 권유한 장본인이다.
그 결과 닭고기 육수는 소고기 육수로 바뀌었고,
고춧가루가 더해진 얼큰한 한국형 라면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 우리가 아는 빨간 국물의 매운 라면은 이렇게 시작된 역사를 가진 음식이다.
라면과 관련된 다양한 에피소드 중 하나는 48년간 라면만으로
식사를 해결한 박종업 할아버지의 이야기이다.
1972년 장협착증을 앓던 그는 라면을 먹고 속이 편안해지는 것을 경험한 이후
삼시 세 끼를 라면으로 해결한 인물이다.
그의 사연이 알려지자 농심은 26년간 라면을 무상으로 제공하며
특별한 인연을 이어간 사례이다.
야구선수 박찬호는 야구부가 라면을 끓여 먹는 모습이 부러워
야구를 시작하게 된 인물이다.
이렇듯 라면은 서민의 애환, 예술가의 벗, 학생들의 야식이었던 존재이다.
엄마는 늘 "왜 매일 라면이야? 몸에 안 좋아"라고 하셨다.
라면은 정크푸드의 대명사였고,
먹으면 탈모가 생기고 배만 나온다는 속설까지 있었다.
그러나 그 진실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라면 자체가 독이 아니라 먹는 방식이 문제였던 것이다.
면은 밀가루로 만든 탄수화물일 뿐이고, 수프의 나트륨이 과하다면 반만 넣으면 된다.
계란과 채소를 듬뿍 넣으면 제법 균형 잡힌 한 끼가 된다.
요즘 라면에는 온갖 영양소를 넣어 만든다.
나 또한 라면과 함께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다.
1970년대 말 고교 시절,
우리 학교 입구에는 삼양라면 본사가 자리 잡고 있었다.
1층에는 라면 홍보관을 운영하며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끓인 라면을 판매했다.
수업이 끝나면 학생들이 몰려가 저렴한 라면으로 배고픔을 채우던 공간이지만,
사실 이웃 여고생을 보러 가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던 시절이다.
그 뜨거운 국물과 함께했던 뜨거운 청춘의 설렘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오늘날 한국은 1인당 라면 소비량이 세계 8위 국가이다.
연간 77개 이상을 소비하며,
불닭볶음면 같은 제품은 전 세계적으로 챌린지 콘텐츠로
인기를 끌고 있는 K-컬처의 한 축이다.
라면은 이제 단순한 인스턴트식품을 넘어 한국인의 정서와 문화를 담아낸 문화 코드이다.
한 그릇의 라면에는 전후의 어려움을 이겨낸 사람들의 눈물,
가난한 시절을 함께한 서민의 애환, 학창 시절의 추억, 외로움을 달래주던 위로,
친구와 나눈 우정이 모두 스며있는 것이다.
꼬불꼬불한 면발을 젓가락으로 들어 올릴 때,
우리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삶의 온기를 느끼는 존재이다.
이것이 바로 라면이 한국인의 진정한 소울푸드인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