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진달래꽃 흐드러지게 핀 어느 봄날,
신윤복의 '주사거배(酒肆擧盃)'는 한양의 선술집 풍경을 담고 있다.
넓은 갓 쓴 양반부터 붉은 옷의 별감, 까치등거리 입은 의금부 나장까지 신분도 차림도
제각각인 이들이 한 곳에 모여 술을 마신다.
부뚜막 앞에 앉은 주모는 손잡이 긴 술구기로 술을 따라주고,
손님들 앞에는 탕기와 종지가 어지럽게 놓여 있다.
"술잔을 들어 밝은 달을 맞이하고 술항아리 끌어안으며 맑은 바람을 마주 한다."
혜원전신첩에 실린 이 그림 상단의 제시는 그날의 흥취를 말해준다.
신윤복은 선명한 색채로 화면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주모와 별감의 남색과 붉은색이 시선을 잡아끄는 가운데,
주변의 부드러운 색조는 술자리의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수평선과 수직선의 안정된 구도 속에서 조선 후기 도시의 활기찬 생활상이 펼쳐진다.
조선시대 화가들과 술의 인연은 남달랐다.
단원 김홍도는 '취화사(醉畵史)'라는 호를 붙일 만큼 술을 즐겼고,
김명국은 스스로를 '취옹(醉翁)'이라 불렀다.
최북은 결국 눈밭에서 술에 취해 얼어 죽었고,
장승업은 술에 취해야만 붓을 잡았다.
그들에게 술은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라 창작의 원천이었다.
의식과 무의식 사이 어느 지점에서 예술에 대한 영감을 놓지 않으려는 화가의 몸부림이었을까.
김후신의 '대쾌도(大快圖)'는 또 다른 술자리의 풍경을 보여준다.
만취한 선비가 흐느적거리며 '之'자 걸음을 걷고, 세 명의 친구가 그를 끌고 밀며 부축한다.
갓은 어디론가 팽개쳤고, 입을 벌린 채 고래고래 소리치는 모습이다.
그런데 이 그림에는 날카로운 풍자가 숨어 있다.
영조 시절 살벌한 금주령이 내려졌지만, 처벌받는 것은 술을 빚어 팔던 가난한 백성들이었다.
양반들은 대낮에도 거리낌 없이 술을 마셨다.
그림 속 나무들이 이 광경을 흘겨보는 듯 묘사한 김후신의 번득이는 재치가 돋보인다.
“술을 빚은 자는 섬으로 유배를 보내고,
술을 사서 마신 자는 영원히 노비로 소속시킬 것이며,
선비 중 이름을 알린 자는 멀리 귀양 보내고,
일반인들은 햇수를 한정하지 말고 수군(水軍)에 복무하게 하라”
(『영조실록』, 영조 32년 10월 20일)
조선의 술자리 그림들은 단순한 풍속화를 넘어선다.
그 안에는 신분을 초월한 인간의 평등, 억압된 일상에서의 해방, 그리고 삶의 애환이 담겨 있다.
신윤복의 섬세한 관찰과 선명한 색채, 김후신의 해학과 풍자가 만나 조선의 술자리는
역사의 한 페이지로 기록되었다.
붓 끝에서 번진 술 향기는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그 시대의 술자리로 초대한다.
그림 속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술잔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