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의 세계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흙을 빚고 불로 굽는 일은 인간이 자연과 맺어온 가장 오래된 약속 중 하나다.

한반도에서 구워진 그릇들은 단순히 물을 담고 음식을 담는 용기를 넘어,

각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미의식과 철학,

그 시대가 꿈꾸었던 이상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빙하기가 끝나고 기후가 따뜻해지면서 한반도에 정착생활이 시작되었고,

신석기인들은 흙으로 그릇을 빚어 불에 구워 토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신석기 / 빗살무늬토기 / 서울 암사동


서울 암사동 5호 집터에서 출토된 빗살무늬토기는 신석기시대를 대표하는 완성도 높은 토기로,

그릇 전면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규칙적인 기하학적 무늬를 베풀었다.

빗 같은 도구로 그어진 점과 선은 자연을 배경으로 살아간 신석기인들의 세계관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섭씨 600도에서 700도로 구워진 이 토기들은 아직 투박했지만,

생존을 위한 절실함이 무늬 속에 새겨져 있었다.


도자별 굽기온도


삼국시대로 접어들면서 영남 지방에서는 1,100도 이상 고온에서

구워 단단한 도질토기가 제작되기 시작했다.

경주 금령총에서 출토된 국보 기마인물형토기는 말과 인물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신라토기의 백미로,

말 내부는 비어 있어 술이나 물을 담을 수 있는 주자 역할을 했다.

갑옷을 입은 무사가 말을 탄 이 토기는 단순한 그릇이 아니라

죽은 이를 하늘로 인도하는 주술적 기능을 담았다.

신라인들은 흙으로 빚은 이 작은 조각 속에 현세와 저세상을 잇는 통로를 만들었다.


국보 제91호 “기마인물형토기"


고려시대, 귀족들은 비색이라 불리는 옥빛 청자를 사랑했다.

11세기 후반부터 13세기 초반, 고려청자는 절정에 이르렀다.

맑고 은은한 푸른빛은 마치 가을 하늘을 담은 듯했고,

그 위에 펼쳐진 연꽃과 구름, 학의 무늬는 불교적 이상향을 향한 귀족들의 염원을 담았다.

특히 상감 기법은 고려만의 독창적인 기술이었다.

그릇 표면에 섬세하게 무늬를 파내고 그 자리에 흰 흙과 검은 흙을 메워 넣는 일은

마치 시간을 새기는 작업과도 같았다.

국보 제68호인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은 고려청자의 정수를 보여준다.

구름 사이를 나는 학의 모습이 상감 기법으로 표현된 이 매병은

고려인들이 추구했던 초월적 아름다움의 결정체다.


청자상감운학문매병



그러나 시대는 변했다.

고려 말의 혼란과 조선의 건국은 도자기의 흐름도 바꾸어 놓았다.

분청사기는 그 과도기의 산물이었다.

14세기 후반부터 등장해 15세기 조선 초기에 전성기를 맞은 분청사기는

청자의 기억을 간직하면서도 새로운 시대를 향해 나아갔다.

회청색 흙 위에 백토를 거칠게 칠하거나 아예 그릇을 백토 물에 담가버리는

덤벙 기법은 청자의 정교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그 자유분방함 속에 서민적이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귀얄로 거침없이 그어진 선들은 마치 초서를 휘갈긴 듯한 운동감을 자아냈다.

분청사기는 완벽함을 추구하지 않았다.

대신 자연스러움과 순간의 감흥을 담아냈다.


20251019_085453-horz.jpg 국보 178호 분청사기 음각어문 편병


조선이 유교 국가로 자리 잡으면서 도자기는 다시 한번 변모했다.

15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제작된 조선백자는 유교 이념의 청렴함과 간소함을 그대로 반영했다.

아무런 장식 없이 순백의 아름다움만으로 승부하는 순백자는 절제와 정제의 미학을 보여주었다.

17세기 이후 주류가 된 백자는 조선 후기까지 이어지며 다양한 변주를 낳았다.


특히 청화백자는 백자의 절정이었다.

흰 바탕 위에 푸른 코발트로 그려진 그림들은 담백하면서도 고아했다.

15세기 중반부터 왕실과 사대부층이 애용한 청화백자는 고려청자의 화려함과는 다른,

절제된 우아함을 지녔다.

국보 제170호 청화매조죽문 유개항아리는 매화와 대나무를 푸른 안료로 그려낸 작품으로

선비정신을 시각화한 걸작이다.


청화백자매조죽문유개항아리(靑華白磁梅鳥竹文有蓋壺)


조선 후기로 가면 달항아리라 불리는 백자 대호가 등장한다.

두 개의 반구형 그릇을 접합해 만든 달항아리는 완벽한 원이 아니다.

미묘하게 일그러지고 휘어진 형태, 고르지 않은 유약의 흐름 속에서 오히려 생명력이 느껴진다.

그것은 완벽을 추구하되 자연스러움을 잃지 않으려 했던 조선인들의 미의식이었다.



999.jpg 백자 달항아리 (국보 제310호)


흙을 빚던 손들은 사라졌지만 그들이 남긴 그릇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빗살무늬토기의 소박함, 신라토기의 생동감, 비색 청자의 고고함,

분청사기의 자유로움, 백자의 담담함.

그 속에서 우리는 각 시대가 꿈꾸었던 이상과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숨결을 느낀다.

결국 도자기는 흙으로 빚은 시대의 초상이었던 것이다.



https://youtu.be/7Edx_HDwD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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