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미술관을 거닐다 보면 정지된 캔버스 위에서 살아 숨 쉬는 듯한 운동선수들을 만나게 된다.
땀방울이 튀고 근육이 팽팽하게 긴장된 그 순간들은,
화가들이 포착한 인간 신체의 극한 아름다움이다.
에드가 드가(Edgar de Gas, 1834-1917)는 발레리나들의 섬세한 움직임을 화폭에 담았다.
그의 작품 속 무용수들은 화려한 무대 위가 아닌 연습실에서 땀 흘리며 몸을 풀고 있다.
《무대 위의 발레 리허설》에서 드가는 발레리나들의 일상적 순간을 파스텔로 포착했다.
튀튀를 입은 무용수들이 스트레칭하고, 자세를 확인하고,
잠시 쉬는 모습은 무대 위의 우아함보다 더 진실하다.
드가는 움직임 그 자체보다 움직임을 준비하는 신체에 매혹되었던 것이다.
조지 벨로스(Wesley Bellows,1882 – 1925)는
20세기 초 미국의 거친 에너지를 권투 링 위에서 발견했다.
《스태그 앳 샤키스》는 불법 권투 경기장의 폭발적인 순간을 담아낸다.
두 권투선수가 맞붙은 링 주변으로 관중들의 열광이 소용돌이친다.
벨로스는 강렬한 명암 대비와 역동적인 붓질로 주먹이 얼굴에 꽂히는
그 찰나를 생생하게 재현했다.
그림에서는 땀 냄새와 함성이 느껴질 듯하다.
움베르토 보치오니를 비롯한 미래주의 화가들은 운동 그 자체를 해체하고 재구성했다.
《공간 속의 연속성의 독특한 형태》는 조각이지만,
달리는 인간의 역동성을 시간과 공간 속에서 펼쳐 보인다.
미래주의자들에게 움직임은 단순히 묘사의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 언어를 만드는 원리였다.
현대에 이르러 데이비드 호크니는 수영하는 사람들을 통해
캘리포니아의 찬란한 햇살과 물의 투명함을 탐구했다.
《더 큰 첨벙》에서 수영장에 뛰어든 순간의 물보라는 정지된 시간처럼 느껴진다.
호크니는 격렬한 운동보다 여가로운 움직임 속에서 색채와 형태의 순수한 즐거움을 발견했다.
운동하는 신체를 그린다는 것은 단순히 동작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의지, 힘, 균형, 그리고 중력에 맞서는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일이다.
화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움직임이라는 찰나를 영원으로 바꾸어냈다.
그들의 캔버스 위에서 운동선수들은 여전히 달리고, 뛰고, 춤추며,
우리에게 신체의 가능성과 예술의 힘을 동시에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