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과학의 경계에서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1984년 스위스에서 태어난 파비안 오프너

예술과 과학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실험적 사진작가이자 시각예술가다.

그는 스스로를 "100퍼센트 과학자도, 100퍼센트 예술가도 아닌

그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어린 시절 스위스의 빙하를 하이킹하며 자연에 대한 호기심을 키웠고,

14세에 해럴드 에저튼의 총알이 사과를 관통하는 사진을 보고 처음 카메라를 손에 쥐었다.

이후 바젤 예술대학에서 회화, 사진, 타이포그래피를 공부한 그는

2008년 스위스 응용과학예술대학에서 제품 디자인 학위를 받았다.


오프너의 작품은 인간의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찰나의 순간들을 포착하거나,

아예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순간을 창조한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붕괴(Disintegrating)' 시리즈는

페라리와 람보르기니 같은 고성능 자동차들이 폭발하듯 수천 개의 부품으로

분해되는 장면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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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극적인 순간은 실제로 일어난 적이 없다.

오프너는 모형 자동차를 완전히 분해한 후, 가장 작은 나사 하나까지 수백,

수천 번 촬영하여 하나의 이미지로 합성했다.


그는 말한다.

"당신이 이 이미지에서 보는 것은 실제 삶에서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순간입니다."

'밀레피오리(Millefiori)' 시리즈는 베네치아 유리공예에서 영감을 받아 물 위에

아크릴 물감을 떨어뜨리고 고속 회전시켜 만든 만화경 같은 패턴을 포착한다.

액션 페인팅의 대가 잭슨 폴록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이 시리즈는

원심력이 만들어내는 찰나의 예술을 카메라로 영원히 보존한다.


3333.jpg 밀피오리(Millefiori), 코로나(Corona), 오키드(Orchid), 오일스필(Oil Spill) 프로젝트의 일부 이미지들


'오로라(Aurora)' 시리즈는 편광을 받은 비누방울의 무지갯빛 패턴을 촬영하여

북극광의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재현했다. '오일 스필(Oil Spill)' 시리즈는

우연히 빗속 웅덩이에서 본 기름막의 찬란한 빛깔에서 영감을 받아,

물 위에 기름방울을 떨어뜨려 만든 우주적 규모의 추상 이미지들이다.


63.jpg 이리디언트 시리즈, 2013-2015, 잉크젯 프린트


오프너는 단순한 사진작가를 넘어 협업하는 예술가다.

그는 이론물리학자 브라이언 그린,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 MIT 에저튼 센터 등

과학자들과 협력하여 '블랙홀', '빅뱅', '시간 속의 무한한 순간' 같은 추상적 과학 개념을 시각화했다.

2019년에는 구글 아트앤컬쳐와 협업하여 LED 드론 페인팅과 장노출 사진기법으로

알프스 빙하의 후퇴를 극적으로 시각화했다.


이는 스위스 취리히공대 빙하학 연구소의 데이터를 예술적으로 재해석한 프로젝트로,

그는 "사람들은 스프레드시트보다 아름다운 이미지에 더 감동받는다"며

기후변화 같은 과학적 발견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예술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의 작업은 치밀한 계획과 무수한 실험을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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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치(Hatch)' 시리즈에서는 페라리 250 GTO가 알을 깨고 나오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석고로 수십 개의 껍질을 만들어 모형 위에 던지며

마이크로 소리를 감지해 카메라 셔터와 플래시를 동기화했다.


때로는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알코올을 태우는 '오로라' 시리즈 촬영 중에는 예상보다

격렬한 반응에 사진보다 몸을 피하는 게 우선이었다고 고백한다.

오프너는 살바도르 달리의 초현실주의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그의 예술은 교훈적이지 않다.


"사람들이 그저 이미지를 보고 그 아름다움을 감상하기만 해도 괜찮습니다."


그는 과학과 예술이 같은 현실을 설명하는 서로 다른 언어라고 믿는다.

휴스턴 미술관, 바이마르 바우하우스 박물관, 싱가포르 아트사이언스 뮤지엄 등

세계 각지에서 전시된 그의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일상 속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하고,

우리를 둘러싼 자연의 경이로움에 잠시 멈춰 서게 만든다.

현재 미국 코네티컷에 거주하며 작업하는 오프너는 시간과 공간,

현실의 복잡한 연결을 탐구하며, 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각적 경험을 계속 창조하고 있다.


3321.jpg 파비안 외프너 - 댄싱 컬러스 시리즈,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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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KUK6y2ofN6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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