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한국 미술시장의 심장부, 화랑.
작가와 대중을 잇는 이 공간들은 어떻게 탄생했고,
어떤 작품들을 우리에게 선보여왔을까.
화랑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한국 현대미술의 궤적이 함께 펼쳐진다.
한국 최초의 화랑은 개화기 서화가인 해강 김규진이
1913년 서울 천연동에 세운 '고금서화관'이다.
1903년 고종의 명을 받아 일본에서 사진 기술을 배워온 김규진은
한국인이 개설한 최초의 사진관인 천연당사진관을 열었고,
여기에 부설된 고금서화관은 사진, 서화 판매, 표구를 겸했다.
이어 우경 오봉림이 세운 조선미술관도 서화 작품을 전시 판매하며
표구업을 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방 후에는 동인화랑, 화신화랑, 대원화랑 등이 명동을 중심으로 생겨났다.
1950년 9·28 서울 수복 후 수화 김환기 화백이 종로2가에
종로화랑을 설립했으나 곧 문을 닫았다.
이 시기 화랑들은 작품 전시와 판매의 기능을 하면서도
아직 체계적인 상업 화랑의 모습을 갖추지는 못했다.
한국 상업 화랑의 진정한 시작은 1956년 반도호텔 로비에 설립된 반도화랑이다.
외국 무역상사 직원의 부인 실리아 짐머만이 조직한 '서울아트소사이어티'가
개설한 이 화랑은 김종하와 박수근의 2인전으로 문을 열었다.
초대 관장 실리아 짐머만이 귀국한 후 도상봉, 박호열이 관장을 이어받았으나
경영난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1958년 아시아재단의 후원으로 재설립된 반도화랑은
이대원 관장 시기에 본격적인 상업 화랑으로 자리 잡았다.
박수근, 장욱진, 변관식, 이상범, 김환기, 유영국 등 근대 미술계의 거장들을 해외에
소개하며 한국 미술의 첨병 역할을 수행했다.
박수근의 소박한 서민 풍속화, 장욱진의 동화 같은 작은 화폭들이
이곳을 통해 미군과 외국인들에게 알려졌다.
반도화랑에서 1961년부터 1968년까지 근무했던 박명자가 1970년 4월
현대화랑을 설립하면서 한국 화랑계는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1970년대는 본격적인 화랑 시대의 개막이었다.
현대화랑은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같은 거장들의 작품을 소개하며
한국 근현대미술의 가치를 재조명했다.
진화랑과 선화랑도 개관하여 인사동을 중심으로 화랑 거리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1980년대는 화랑의 폭발적 성장기였다.
경제 발전과 함께 미술품 수집 붐이 일었고,
압구정동과 인사동을 중심으로 수많은 화랑이 생겨났다.
표화랑, 가나화랑, 금호미술관 등이 이 시기에 설립되어 한국 미술계의 중심축을 형성했다.
가나화랑은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를 적극적으로 소개하며
한국에 현대미술의 새 지평을 열었다.
백남준의 'TV 부처'는 불상이 모니터 속 자신의 모습을 응시하는 작품으로,
동양철학과 첨단 기술의 만남을 보여주었다.
2000년대 들어 한국 화랑계는 국제화와 전문화의 길을 걷고 있다.
청담동과 삼청동, 한남동에 고급 화랑들이 밀집하며 새로운 미술 중심지가 형성되었다.
국제갤러리, 아라리오갤러리, PKM갤러리 같은 대형 화랑들은 세계적 작가들을 초청하고
국제 아트페어에 참가하며 한국 미술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국제갤러리는 이우환과 단색화 작가들의 작품을 세계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우환의 '조응' 연작은 돌과 철판의 만남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탐구한 작품으로,
서구 미니멀리즘과 차별화된 동양적 사유를 담아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
최근에는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는 대안공간과 소규모 화랑들도 활발하다.
송은아트스페이스, 두산갤러리 같은 기업 화랑은 신진 작가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한국 현대미술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2011년 롯데호텔갤러리로 이름을 바꾼 옛 반도화랑은
김종하, 백영수, 권옥연, 황용엽, 윤명로 등 원로 작가들의 전시를 통해 역사의 맥을 이었다.
한국 화랑의 역사는 110여 년이다.
고금서화관에서 시작된 씨앗은 반도화랑에서 꽃피었고,
현대화랑을 거쳐 수많은 화랑으로 번져나갔다.
그 안에는 한국 미술의 성장과 도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화랑이라는 문턱을 넘을 때마다,
우리는 예술가의 영혼과 만나고 시대의 이야기를 듣는다.
화랑은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예술이 숨 쉬고 역사가 기록되는 살아있는 현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