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어느날 오후,
나는 한 중학생 화가의 그림 앞에 서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그림을 담은 책을 펼쳐들고 있었다.
레오 박소훈.
2009년생. 동탄에 사는 평범한 중학생이지만,
그의 손끝에서 펼쳐지는 세계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런던의 타워브리지, 빅벤, 세인트폴 대성당.
그가 여행지에서 마주한 건축물들이 종이 위에 섬세한 선으로 다시 태어나 있었다.
처음엔 그저 '잘 그린 그림'이라고만 생각했다.
어린 나이에 이렇게 정교하게 건축물을 묘사할 수 있다니, 재능이 대단하구나.
그런데 한참을 들여다보다 문득 깨달았다.
이 아이는 건물을 그리는 게 아니었다. 시간을 그리고 있었다.
한 장의 그림을 완성하는 데 얼마나 걸릴까.
몇 시간? 며칠? 건축물의 창문 하나하나, 벽돌의 질감 하나하나를 그려내는 동안
이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세상에서,
이 아이만은 천천히 걸으며 하나의 건물 앞에 오래 머물렀을 것이다.
그것도 몇 시간씩, 며칠씩.
우리는 너무 빨리 본다. 여행지에서도, 미술관에서도.
명작 앞에서 몇 초 서 있다가 사진만 찍고 떠난다.
그림은 찍었지만 보지는 못했다.
레오의 그림을 보며 나는 부끄러워졌다.
이 열세 살 소년이 건축물 하나를 바라보는 시간이,
어쩌면 내가 일 년 동안 미술관에서 작품들을 바라본 시간보다 길지 않을까.
그는 동네 미술학원을 잠깐 다닌 것 외에 특별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방학 때마다 부모님과 떠난 여행에서 본 풍경들을, 그냥 그리고 싶어서 그렸다.
좋아하는 것을 그린다는 것.
얼마나 순수한 동기인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800여 편의 그림은 그렇게 축적된 시간들이었다.
영미권의 화가들과 출판사, 건축물 관계자들이 주목한 것은 단지 기술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 그림 속에 담긴, 한 아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진심 어린 시선이었을 것이다.
패트릭 브링리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일하며 깨달았던 것처럼,
예술은 우리에게 힘을 발휘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레오는 어린 나이에 이미 그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건물 하나를 완성하는 동안, 그는 기다림을 배웠을 것이다.
세밀한 선 하나를 그을 때마다 인내를 익혔을 것이다.
대상을 오래 바라보는 법을 체득했을 것이다.
그의 그림 앞에서 나는 자문했다.
나는 무엇을 이렇게 오래, 이렇게 깊이 바라본 적이 있었던가.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효율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배운다.
빨리 보고, 빨리 판단하고, 빨리 결론 내린다.
하지만 레오의 그림은 말한다.
천천히 봐도 괜찮다고.
한 가지를 오래 들여다보는 것이 시간 낭비가 아니라고.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세상과 진짜로 만나는 방법이라고.
동탄의 한 아파트에서,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한 소년이 책상 앞에 앉는다.
여행에서 찍어온 사진을 보며,
또는 기억 속 풍경을 떠올리며 연필을 든다.
한 올 한 올 선을 그어나간다.
창밖에선 저녁이 깊어가고, 방 안에선 런던의 거리가 되살아난다.
그것은 단순한 모사가 아니다. 한 아이가 세상과 대화하는 방식이다.
레오의 그림은 완성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것을 보는 우리에게도 시간이 필요하다.
서둘러 넘기지 말고, 그 선들을 따라가 보라.
얼마나 많은 순간들이 한 장의 그림에 응축되어 있는지.
그림 속 건물을 그가 바라보았던 시간만큼,
우리도 그의 그림을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것이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다.
멈출 수 있는 용기. 천천히 볼 수 있는 여유.
한 가지에 오래 머물 수 있는 힘.
레오 박소훈이라는 열세 살 화가는,
우리가 잊고 살던 그 소중한 것들을 조용히 일깨운다.
세상을 그리는 아이. 아니, 세상을 온전히 보는 법을 가르쳐주는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