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인간은 추하지만 인생은 아름답다."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1864~1901)이 남긴 이 역설적인 말은,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하나의 진리다.
프랑스 대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사고로
하체가 성장하지 못해 불구의 몸을 가지게 된 화가.
그는 자신이 자라온 화려한 귀족 사회 대신,
파리 뒷골목 몽마르트 언덕의 소외된 사람들을 화폭에 담았다.
로트렉의 캔버스 앞에 서면,
우리는 19세기 파리 사창가의 적나라한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그가 그린 매춘부들은 아름답지 않다.
아니, 차라리 추하다고 말하는 편이 정직할 것이다.
'에물랭가의 사창가'에 등장하는 여인들을 보자.
성병검사를 위해 하반신을 노출시킨 채 서 있는 그녀들의 표정은 무감각하기 그지없다.
축 처진 가슴과 늘어진 뱃살, 요란한 화장으로도 감출 수 없는 세월의 흔적들.
한때는 관능미로 남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육체는 이미 시간 앞에 무릎을 꿇었다.
검진 순서를 기다리며 미리 옷을 벗고 있는 그녀들에게 수치심이란 사치다.
시간을 절약해야 다음 손님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에물랭가의 사창가'에서 법적 의무인 의료 검진을 위해 속옷을 들어올린 채
서 있는 여인들에게서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관능적인 몸은 찾을 수 없다.
오히려 결점을 드러내는 피곤한 육신만 존재한다.
일상의 진부함, 권태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평범한 모습이 있을 뿐이다.
'몸단장'에 그려진 빼빼 마른 여성의 등 뒤로는 고단함이 흐른다.
하루를 준비하는 매춘부의 뒷모습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또 하루를 버티기 위해 몸을 준비하는, 생존을 위한 의식일 뿐이다.
매춘 사업에도 엄연히 계급이 존재한다.
지식이나 집안, 돈과는 상관없이 오직 타고난 미모라는 계급에 따라 수입의 차이가 생기고,
그 수입에 따라 삶의 질은 달라진다.
에두아르 마네의 <나나>는 이 계급의 정점에 선 고급 매춘부를 보여준다.
속옷 차림으로 거울 앞에서 립스틱을 짙게 바르는 여인.
그녀의 풍만한 엉덩이를 응시하는 중절모 신사의 눈길.
커다란 등받침이 있는 소파는 휴식 공간이 아니라 쾌락의 장소다.
당당하게 자신의 엉덩이를 내밀고 있는 여인의 표정은 자신의 가치를 정확히 아는 자의 여유로움이다.
에밀 졸라의 소설 속 나나는 빈민가 출신이지만 뛰어난 미모로
연극 무대까지 진출해 상류층 남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녀는 한 남자에게 정을 주기보다 많은 남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삶의 지혜임을 안다.
남자들에게 경쟁력을 부추길수록 나나는 부를 축적하지만,
그녀에게 빠진 남자들은 패가망신한다.
하지만 시간을 이기는 장사는 없다.
타고난 관능미도 시간의 흐름 앞에서는 무릎을 꿇는다.
가진 것이라고는 달랑 육체가 전부인 매춘부들에게 시간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와 같다.
사람들에게 사랑받던 고급 매춘부도 시간이 흐를수록 상품가치가 떨어지고,
결국 로트렉이 그린 서글픈 사창가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로트렉이 사창가를 배경으로 그린 그림들은 당시 엄청난 스캔들을 불러일으켰다.
사람들은 그를 타락한 인간으로 낙인찍었다.
하지만 로트렉은 이들을 그리면서 어떤 도덕적 판단도 하지 않았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했을 뿐이다.
로트렉은 창녀들의 공동식당에서 함께 식사하며 시간을 보냈다.
매춘부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친구가 됐다.
'물랭가의 살롱에서'에 그려진 성매매 여성들의 대각선 구도는 단순한 배치가 아니라
그들의 관계와 위계를 보여준다.
맨 앞 여성은 편하게 앉아 있는 반면, 꼿꼿하게 앉고 목까지 가리는 옷을 입은 여성은
매춘부를 관리하는 여주인이다.
로트렉은 쓸쓸한 분위기를 표현하는 데 주의를 기울였다.
로트렉은 창녀를 소재로 한 그림에서 포르노그래피를 절대 허용하지 않았다.
이는 기존 누드화의 관음증적 시선과 대조적이다.
'침대에서'나 '키스'처럼 동성애를 주제로 한 그림에서도
그는 함께 갇혀 있는 여성들이 맺는 애정 관계를 섬세하고 친밀하게 표현했다.
장애로 인해 소외당한 로트렉은 아웃사이더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봤다.
타인에게 편견과 선입견 없이 다가갔다.
부도덕하다고 낙인찍힌 매춘부,
선술집에서 인생을 낭비하는 낙오자들을 그린 그림에는 풍자도 동정도 없다.
그저 한 인간으로 그렸을 뿐이다.
로트렉은 아름답거나 미화된 표현을 자제했다.
오히려 인간의 못나고 나약한 모습을 강조했다.
그의 인물들은 예쁘고 멋있지 않지만 자신만의 개성과 매력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더 특별하고 진실한 느낌을 준다.
술에 중독되어 불안정한 상태에 빠졌던 로트렉은 1899년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퇴원 후에도 술을 끊지 못한 채 1901년 어머니가 지켜보는 앞에서 만 3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가 남긴 작품들 속에서,
1800년대 말 몽마르트에서 춤추고 웃고 고뇌하고 외로워하던 이들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추한 육체와 초라한 삶 속에서도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냈고,
로트렉은 그 버티는 힘 속에서 인생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인간은 추하지만 인생은 아름답다." 이 말은 결국 로트렉 자신의 고백이기도 했다.
불구의 몸으로 귀족 사회에서 소외당했지만,
그 소외 덕분에 진짜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화가.
그의 작품 세계는 우리에게 묻는다.
과연 무엇이 아름다움이고, 누가 인간다운 삶을 사는 것인가?